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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진 한국정보과학진흥협회 이사장 인터뷰
“당신은 앞으로 열매가 많이 달릴 나무... 실패는 과정일 뿐”
기사입력  2018/03/30 [21:20] 최종편집    이성관 기자

 

[경기브레이크뉴스 이성관 기자] 우리나라의 지역사회는 대체로 장년층의 무대인 경우가 많다. 웬만한 단체에서는 50대 정도면 청년이라는 말을 듣는 게 보통이다. 고령화 현상은 앞으로도 당분간 지속될 것이 분명해 보이기 때문에 지역사회의 고령화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그러나 고령화가 진행된다고 해서 그 지역에 젊은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청년들은 지역사회 봉사단체라는 것 자체를 올드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자신들이 설 자리가 아니라고 여긴다. 그 과정에서 기성세대와 청년세대의 구분이 점점 더 명확해지고, 서로의 일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게 된다. 그리고 서로는 끊임없이 멀어져만 간다.

 

 

한국정보과학진흥협회 박승진 이사장은 지금은 47세로 중년층에 속해 있지만 그가 지역사회에 처음 모습을 드러낼 때만 해도 30대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지역사회에 주축은 60세 이상의 장년층이었고, 그 안에서 새파란 젊은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아무도 하지 않았다.

 

▲ 인터뷰를 나누고 있는 박승진 이사장     © 경기브레이크뉴스


 

◎ 무거운 직함들

 

 

박 이사장은 나이에 비해 가지고 있는 직함이 꽤 무겁다. 이사장, 회장 등의 수식어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가 속해 있는 단체들의 평균 연령이 그의 나이를 훨씬 웃돌기 때문이다. 또 항상 웃는 얼굴을 하고 있는 그는 또래에 비해서도 어려 보인다. 그런 그가 지역사회에서 인정을 받기 시작한 것은 그가 평촌라이온스클럽이라는 사회단체의 환경담당 이사를 역임했을 때였다고 말했다. 당시 환경담당 이사라는 것은 딱히 직함이랄 것도 없는 것이었는데, 학의천 환경정화 사업에 열정적으로 임하는 박 이사장을 선배들이 눈여겨보았고 그 이후로도 중책을 맡아오다 지금 평촌라이온스클럽의 회장직을 맡고 있다고 말했다.

 

 

박 이사장은 “어렸을 때 부모를 여의고, 조부모 손에서 자란 것이 지역의 어르신들을 대하는데 큰 역할을 한 것 같다”며, “오히려 어르신들은 마음에 문을 열고 있는데 젊은이들이 막연한 두려움을 갖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박 이사장은 세대 간의 갈등이 점점 커지는 이유가 서로 만나지 않는 데서 비롯된다고 설명하고, “막상 젊은 사람들이 들어오길 가장 바라는 것이 지역의 어르신들”이라고 덧붙였다.

 

 

◎ 금수저라는 오해

 

 

각종 지역사회 커뮤니티에서 ‘장’을 맡고 있는 박 이사장을 부잣집 도련님쯤으로 여겼던 것은 멀리 찾을 필요도 없다. 바로 본 기자가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기업인들이 주축이 되는 지역사회 단체의 특성상 잘나가는 기업의 오너가 아니면 무거운 직함을 가지기 힘들고,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는 박 이사장이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돈이 많았을 것이라는 일반적인 추측을 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박 이사장은 본 기자의 그런 시선에 “그런 오해를 많이 받는다”며, 어릴 적 배달 일을 하다가 난 교통사고 이야기를 꺼냈다.

 

 

박 이사장은 “나는 전과가 하나 있다”라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어서 “어릴 적 배달 일을 하다가 택시를 들이받았는데, 그 택시 기사가 손해배상액으로 천만원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박 이사장은 그 택시기사로서는 당연한 요구였다고 말하며, 택시기사가 전치 7주의 부상을 입었고, 유일한 생계수단인 택시도 상했다는 점도 말했다. 그리고는 “그러나 당시 나는 돈이 없었고, 8개월의 실형을 받았다”고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박 이사장은 그 후 수십일 간 구치소 생활을 하다가 집행유예로 풀려나게 되었다는 이야기로 자신이 ‘금수저’라는 오해에 대한 답을 마무리했다.

 

▲ 강의하고 있는 박승진 이사장     © 경기브레이크뉴스


 

 

◎ 지역경제의 key-player

 

 

3년 전 본지에서는 박 이사장과 인터뷰를 통해 기사가 나간 적이 있었다. 그때 본지 기자가 박 이사장을 표현한 말은 지역사회의 key-player였다.

 

 

박 이사장은 그런 수식어는 너무 자신을 추켜세운 것이라고 손사래를 쳤지만 그가 진행하고 있는 사업들의 면면을 짚어보면 그리 손사래칠 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박 이사장은 자신을 “도전하는 사람”이라고 규정했다. 두 번의 사업실패로 집까지 다 사라지고 처가로 들어가야 하는 시련을 겪기도 했지만 다시 처음부터 일어서는 연습을 했다. 그 연습은 역시 도전하는 것부터 시작이었다. 그가 그런 암울한 현실에서도 반드시 지켰던 것은 공부하는 자세였다. 실제 늦깎이 대학생으로 대학을 들어가고 지금 박사과정에 이르기까지 공부만은 계속 이어왔다고 전한다. 박 이사장은 실패의 경험 또한 공부로 여겼다. 그래서 “성공으로 가는 과정에 생기는 실패는 경험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그 실패에 대해서는 전혀 문제 삼지 않는 것이 내 삶의 원칙이다”라고 밝혔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나 스스로 실패를 절망이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의 모습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 이사장은 성결대와 안양대학교 등 지역의 대학교에서 취업아카데미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청년들이 취업을 위해 여러 노력을 하고 있지만 많은 수의 청년들이 취업을 오히려 두려워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한다. 무엇을 하게 되는지, 또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기업에 들어가고, 들어가서는 재교육의 시간을 또 들여야 하며, 그 기간에 생기는 트러블을 미리부터 두려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박 이사장이 운영하는 취업 아카데미에서는 그러한 두려움을 없앨 수 있도록 실무에 적응할 수 있는 교육을 한다고 소개했다. 그 결과, 2012년 당시 62%를 기록했던 아카데미의 취업률이 지금 78%로 향상됐고, 취업 후에도 기업이나 취업자 모두 만족도가 높다는 후문을 전한다고 설명했다.

 

 

◎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일들

 

 

박 이사장은 자신의 인생이 좀 더 젊은 시절 그렸던 타임 테이블에 맞추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박 이사장은 멘토로 여기고 있는 은인에게 들었던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충고’가 이제까지의 삶의 기준이 되었고, 그때 공부를 시작하면서 그렸던 자신 인생의 길을 차근차근 밟아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 길의 한 쪽에는 ‘정치’라는 것도 들어 있었다. 박 이사장은 “2001년 대선에서 나는 자발적 ‘노빠’였다”고 말하며, “그 후로 지금 문대통령 시대에 이르기까지 참 많은 일이 있었고, 문 대통령이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평하게 결과는 정의롭게’라는 취임연설을 할 때 아내와 둘이 울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박 이사장은 “젊은이들과 정치 그리고 지역사회가 서로 유리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안양이 놓친 주요 어젠다가 많고 여전히 그것을 지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더 이상은 아직 시기상조라며 말을 아꼈다.

 

 

 

박 이사장은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을 해보라는 기자의 말에 “처음부터 끝까지 겸손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경험에 대해서 꼭 간직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자수성가를 이룬 여타의 기업인들과 다른 점은 그 두 가지였다. 실패했을 때 가지게 되는 좌절감 혹은 성공했을 때 가지는 우월감 둘 다 박 이사장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그가 아무 것도 없을 때 결혼해서 지금까지 곁을 지켜온 아내가 한 말을 지금 미래에 대해 걱정하고 있는 청년 모두에게 남기며 기사를 마친다.

 

 

“당신은 앞으로 열매가 아주 많이 달릴 큰 나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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