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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기상, 건국 수도 오녀산성…단군 관련 환인
험한 800m 산봉우리에 축조, 천혜의 요새
기사입력  2017/02/06 [16:58] 최종편집    채흥기 기자

주몽의 고구려 시조비, 말발굽 중원으로 향하고...

혼자서 말이 통하지 않는 중국을 여행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7월은 우기철이다. 23일 오전 비가 많이 와서 한 때 고구려 수도였던 국내성이 있는 집안은 통과하기로 했다. 예전에 가족들과 관광을 했던 경험도 있었다.


전날 포털을 검색해 기차역이나 버스터미널 등 그날 가야할 곳 필요한 것에 대해서는 중국어를 미리 메모지에 써놓았다. 고구려의 수도였던 오녀산성을 가려면 요녕성 환인시를 가야한다. 환인까지는 버스로 가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환인시까지 간 다음 택시를 타고 4km 떨어진 오녀산성 입구까지 갔다. 박물관을 본 다음 나와 버스를 타고 약 7키로 정도를 가니 오녀산성 입구가 있었다. 초반 가파른 돌계단을 오른다. 박물관은 출토된 유물 등이 전시돼 있다.

 

▲ 돌로 쌓은 산성 모습     © 경기브레이크뉴스(안양주간현대)



버스를 타고 가기 전 큰 비석이 있는 고구려시조비라고 쓰여 있다. 동북공정을 하는 중국이지만 고구려 성이라는 것은 인정하고 있다. 다만 고구려가 중국의 고대 지방 정부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동북의 패자로서 광활한 땅을 지배하고 있던 고구려를 수나라와 당나라가 침공해 대패했다는 사실에서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역사왜곡을 넘어 사기를 치고 있는 셈이다.

 

환인이란 지명은 고조선의 지명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환인은 우리 민족의 시조로 환웅의 아버지이자 단군의 할아버지로 하늘의 신을 의미한다.


한민족문화대백과 자료에 따르면 환인오녀산성(桓人五女山城)은 고구려시대의 왕성인 졸본성으로 추정된다. 중국 요녕성 환인현에서 약 4km 지점에 있는 고구려시대의 성곽. 오녀산의 북쪽과 동쪽에 연결되어 있는 높고 낮은 여러 산봉우리 가운데서 가장 높고 험한 800m의 산마루를 중심으로 그 둘레에 축조돼 있다.

 

▲ 고구려시조비. 산을 오르기 전 주차장 인근에 있다     © 경기브레이크뉴스(안양주간현대)

 

오녀산의 서남쪽에는 넓은 분지가 있고 동남쪽은 압록강의 지류인 혼강(渾江)이 있다. 오녀산의 서쪽 산기슭에서 시작되는 좁고 험한 골짜기로는 통화(通化)로 통하는 길이 지나간다.


동남쪽에서 흐르는 혼강은 여러 산굽이를 지나 오녀산 기슭에 이르러 깎아내린 듯한 가파로운 벼랑 사이를 통하여 환인분지로 흘러든다. 환인에서 고구려의 옛 수도인 집안(集安)으로 가는 데는 통화로 통하는 육로와 혼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수로가 있었으며, 집안에서 심양 쪽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환인을 거쳐야 했다. 이와 같이 오녀산성은 고구려의 수도인 집안과 서쪽지방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대에 위치했다.


성돌은 30×20×35㎝의 크기이며, 성벽 축조공법은 굽도리축조공법이 남벽에서 확인됐다. 굽도리축조공법이란 굽도리를 조성할 때 계단식으로 경사지게 쌓는 방법으로 산성에서는 협곡에 쌓을 때와 높은 성벽을 축조할 때 많이 적용됐다. 이 축조방법의 기본은 높은 성벽을 보다 견고하게 하기 위해 성벽의 굽도리부분을 밑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면서 성돌을 약간씩 뒤로 물려 쌓는 것.

 

▲ 유일한 수원지 였을 것으로 추정. 항상 물이 마르지 않았다 한다     © 경기브레이크뉴스(안양주간현대)

 

산성의 동문터는 성벽이 서로 엇갈리면서 한쪽 벽이 다른 쪽 벽을 모나게 감싸서 옹성을 이루었다. 이런 형식은 오녀산성과 국내성에서만 보이므로 고구려 옹성으로서는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인 듯하다.

 

성안에는 천지라고 하는 못이 있다. 이 못의 물은 마른일이 없다고 한다. 못은 동서로 긴 장방형인데 그 크기는 동서의 길이 12m 남북의 너비 5m, 깊이는 2m 정도 된다. 못은 암반을 깎아낸 다음 변두리에 큼직큼직한 막돌을 쌓았으며 지면에 나타나는 부분에만은 네모나게 잘 다듬은 돌을 규모 있게 쌓았다. 못의 북쪽 벽 가운데에는 물이 빠져나가는 구멍을 만들었다. 못의 서남 모서리밖에는 이 못과 연결된 조그마한 샘을 팠다. 이 샘 역시 못에 쓴 돌과 같은 잘 다듬은 돌로 쌓았다.

 

▲ 산성에서 출토된 유물들     © 경기브레이크뉴스(안양주간현대)



광개토대왕릉비에는 추모왕(鄒牟王)이 비류곡(沸流谷)의 홀본(忽本) 서쪽의 산 위에 성을 쌓고 도읍을 정하였다고 했는데, 이곳 오녀산성이 이 때에 쌓았다는 성으로 비정하는 견해도 있으나 고고학적 뒷받침은 돼있지 않다.

 

특징은 전형적인 고구려의 축성법인 굽도리식축조공법이 이용됐다는 점과 고식(古式)의 옹성 형태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약간씩 비가 내리는 가운데, 산성을 둘러보았다. 주거지로 보이는 유적도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사진 취재 채흥기 기자

 

▲ 주거지 유적     © 경기브레이크뉴스(안양주간현대)

 

▲ 박물관에 있는 오녀산 정상 사진. 고구려 제일수도라 적혀있다     © 경기브레이크뉴스(안양주간현대)
▲ 발굴 당시의 사진     © 경기브레이크뉴스(안양주간현대)
▲ 산 정상에 있는 전망대     © 경기브레이크뉴스(안양주간현대)
▲ 산성입구     © 경기브레이크뉴스(안양주간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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