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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기 품었다’, ‘정신력으로 무장’... 월드컵 평가전을 논하는 우리 뉴스
아직도 정신력 타령, 전문성도 없고 표현도 진부해
기사입력  2018/06/05 [15:44] 최종편집    이성관 기자

 

▲ 이성관 기자     ©경기브레이크뉴스

[경기브레이크뉴스 이성관 기자] 남북미 화해무드와 지방선거로 우리나라에서 관심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는 세계적인 이벤트가 있다. 바로 6월 14일 개막하는‘ 러시아 월드컵’이다. 다른 월드컵 때라면 개막을 보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온통 축구열기로 들끓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글을 보는 독자 중에는 ‘월드컵이 한다고!’ 하고 놀라는 사람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월드컵이 이토록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은 비단 남북 평화무드와 지방선거 때문만은 아니다. 이제 사람들은 ‘스포츠 이벤트에 나라 전체가 열광할 이유가 없지 않는가’ 하는 자각을 하고 있다.
이렇게 국가 간 대결을 통해 승패를 가르는 국수주의적 스포츠 이벤트에 관심이 없는  이른 바 선진국이라고 일컬어지는 곳에서 한참 전에 나타났다.


예전에는 국가 간에 얽힌 역사와 문화의 실타래를 전쟁이 아닌 스포츠로 풀어낸다는 의미가 있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승리가 반드시 이루어야할 국민적 열망이 있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각 나라의 축구선수들이 기량을 겨루는 모습을 볼 수 있는 특별한 이벤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아졌다.


한마디로 평소에 축구를 좋아했던 사람들이 월드컵을 통해 동경하던 스타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는 점이 특별할 뿐, 국민 모두가 맘 졸이며 국가대표의 승리를 갈망하며 밤을 지새울 이유가 현저히 사라졌다는 것이다.


사실 월드컵에 출전한 선수들은 한 클럽에서 오랜 기간 발을 맞춰온 사이가 아니기 때문에 경기수준이 리그보다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경기 자체의 승패보다 특정선수의 경기력을 관람하게 된다. 우리나라라서 이겨야하는 것이 아니라 잘하는 팀이 이길 것이라고 여긴다.


물론 그럼에도 자국 선수들을 응원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 결이 많이 달라졌다. 승패보단 경기력에 집중하며 응원할지 비난할지 결정하고 상대가 잘하면 인정한다. 지금까지 말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관중들의 관람수준이 높아졌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 언론은 아직도 90년대에 머물러 있다. ‘고추장 축구’를 운운하며 독기를 품었다느니, 정신력으로 싸운다느니, 투혼을 발휘해야 한다느니 하는 수식어들을 당연하듯 쓴다. 사실 이런 말들은 선수들을 비난하기 위해서 쓰는 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모든 경기는 실력이 아니라 정신력으로 판가름 난다는 전제가 깔리게 되기 때문이다. 만약 경기에 질 경우 선수들은 정신력이 떨어져서 진 것이 되고, 패배했다는 이유만으로 정신력이 나약한 선수로 낙인찍힌다.


예를 들어, 과거 천재 공격수라고 칭송받던 이관우 선수는 원탑 공격수로 출전한 대회성적이 좋지 않자 ‘기량은 좋으나 정신력이 나약한 선수’로 낙인 찍혀 끝내 대표 팀과 연을 맺지 못했다. 또 프리킥의 명수이자 천재적인 침투 패스를 주무기로 하던 고종수 선수도 그 정신력 문제로 엄청난 질책을 받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정신력이 엉망이라던 선수는 운동선수의 나이로는 꽤 많은 나이에 재기하여 좋은 기량을 펼쳤다. 보통 정신력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가 히딩크의 황태자로 불리다 대표팀에서 제외된 것은 부상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어느 새 게임 때문에 축구를 버린 선수로 낙인찍혀 있었다. 당시 언론은 그에게 부족한 점을 ‘악바리 근성’으로 꼽았다.


좀 더 천박한 예도 있다. 언론은 유럽 팀에게 지면 ‘세계의 높은 벽 실감’이라는 기사를 쓰고, 아프리카나 아시아 팀에게 지면 정신력을 따진다. 심지어 남미의 강호들에게 졌을 때도 정신력을 운운하는데 전통적으로 남미에 강했다는 게 그 이유이다.


우리나라는 A매치 경기에서 브라질에게 단 한 번 이겼고, 아르헨티나에게는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다. 우루과이, 파라과이 등과의 역대 전적에도 한참 밀리고 월드컵 본선에서 남미국가와의 전적은 볼리비아와 한차례 비긴 것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게 없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나라가 남미에 강하다는 것일까?


그 연원은 ‘마라도나’라는 전설적인 축구선수가 아르헨티나 대표님에 있을 시절로 돌아간다. 마라도나는 지금의 리오넬 메시가 있기 전에 아르헨티나 선수의 대명사였고, 메시도 한 때 ‘제2의 마라도나’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28년 전인 90년 이탈리아 월드컵예선에서 우리나라는 아르헨티나를 만났고, 그 경기에서 황보관 선수가 월드컵 첫 골을 넣었다. 남미에 강하다는 인식은 그렇게 생겨났고, 97년 브라질과의 평가전에서 김도근이 결승골을 넣으며 이긴 적이 있다는 것이 두 번째 근거로 남게 된다. U-20 월드컵에서 브라질에 3대 10으로 패배를 한 것을 비롯해 수많은 패배들을 기억에서 지우고 언제나 남미에게 강한 면모를 보인다고 중계한다.


“기술력은 남미에 안 되지만 정신력으로 만회하면 전통적으로 우리는 남미에 강했기 때문에 해 볼 만합니다.”


이런 멘트를 요즘에는 ‘아무말’이라고 한다. 축구경기를 승패 위주로 보지 않고 선수들의 기량과 훈련의 성과, 전략전술의 차이 등으로 바라보는 태도가 이미 경기를 관람하는 사람들에게는 익숙하다는 것을 언론은 언제쯤 깨닫게 될 것인가? 그리고 자신들이 쉽게 내뱉는 ‘정신력’이라는 단어가 유망주로 꼽히던 선수를 단번에 망가뜨릴 수 있는 무기라는 것을 언제쯤 인식하고 쓰지 않게 될까?


지금까지 지난 5월 28일 온두라스 전을 앞두고 “신태용호 독기 품었다”라는 기사 제목을 보면서 떠오른 축구팬의 한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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