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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양! 이 사람!] 주식회사 문식품 문동철 대표이사
“회사가 아무리 잘 나가면 뭘 합니까. 직원이 함께 성장해야지…”
기사입력  2022/04/06 [14:41] 최종편집    강성봉 기자

▲ 문동철 ㈜문식품 대표이사     ©

안양군포의왕과천 주간현대신문/경기브레이크뉴스가 창간 14주년을 맞이했다. 본지는 올해 신년호 사설에서 창간 14주년을 기점으로 획기적인 지면개선계획을 발표하겠다고 했지만 실무를 맡고 있는 당사자들이 코로나19에 감염되는 등으로 인해 혁신적인 지면개선을 발표하기는 어렵게 됐다. 시간을 좀 더 가지며 지속적으로 지면개선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약속과 함께 우선 ‘우리 안양! 이 사람!’이라는 꼭지 제목으로 ‘안양을 좀 더 행복한 안양으로, 안양시민을 좀 더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이 사람’을 발굴해 보도하는 인물탐방시리즈를 시작하고자 한다. 이번호에 게재되는 그 첫 인물은 안양시 호계동에서 명품 수제 초코파이를 생산 판매하는 ㈜문식품 문동철 사장이다. 이 시리즈는 군포, 의왕, 과천에도 함께 적용해 시행할 계획이다.<편집자>

 

주식회사 문식품 문동철 대표이사를 지난 3월 22일 문식품 회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문식품은 수제초코파이를 생산 판매하는 회사. 문식품이 만드는 초코파이는 고속도로 휴게소 슈퍼마켓에 판매되고 있다.

 

문동철 대표는 기자를 만나자 마자 “파란만장하게 살았다”며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끝없이 펼쳐냈다.

 

30대까지는 대기업에서 직장생활을 19년 했다. 어찌 보면 상업계를 나와 고졸사원으로 공채로 들어가 고생을 많이 했다. 39살에 대학 갔다. 43살에 사회복지학과 졸업을 했고, 졸업하는 해에 회사를 그만 뒀다. 간부들 사이에 채권 보증사고가 발생했고 그 사건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파산으로 신용불량자가 되고, 정신과 치료도 받고, 기초생활수급자까지 됐다. 군대 사수가 주지스님으로 있는 사찰에 들어갔다. 일종의 도피였다.

 

“지금 생각하면 젊은 나이인데 그때는 그 생각을 못했어요. 받은 충격이 커서 살아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이 많이 된 시기였어요.”

 

사찰 생활도 쉽지 않았다. 사찰을 옮긴다 해서 노가다 일을 하면서 묵묵히 일을 하다 파산 면책은 해야 돼서 부산에 있는 집에 내려갔다. 일을 보고 아이들이 보고 싶어 집에 갔다. 큰 애가 고1 아니면 중3 때였다. 통닭을 한 마리 시켜 먹었다. 맛있게 먹고 사찰이 있는 강화도에 가려고 버스를 타고 올라오는데 호주머니가 이상해 만져보니 돈이 들어 있었다. 통닭 값을 아들이 몰래 넣어놓은 거였다.

 

“눈물이 쏟아져 절에 올 때까지 울었어요. 그날 저녁 많은 생각을 했어요. ‘잘난 아빠는 못되더라도 애들을 위해서라도 더 이상 부끄러운 아빠는 되면 안 되겠다…….’”

 

2008년 하반기 47살이었다. 절에서 내려와 직장을 잡으려고 이력서를 수백 통 써서 보냈다. 그러다 여의도에 있는 노사재취업센터라는 곳에 가서 교육을 받았다.

 

“대기업에서 명퇴한 사람들 교육을 시켜주는 곳이었어요. 1:1로 매칭 컨설턴트가 배정이 되고 전직 지원을 해주었어요.”

 

3개월 교육 받고 담당 컨설턴트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자기가 만난 사람 중에 나를 아주 특별한 사람이라고 하더라고요.”

 

절에 가 세상과 단절된 삶에 5년이란 공백으로 뭘 해야 될지도 모르겠고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이력서 쓰는 법부터 시작해서 새로 배웠다.

 

그러던 차에 안양지역의 작은 유통회사에서 사람을 뽑는다는 공고가 났다. 평촌에 있었다. 45살 미만이라는 단서가 있었지만 영업을 했던 관록으로 “48살인데 면접을 볼 수 있겠냐”고 전화를 했다. 와보라고 해서 두 시간 동안 면접을 봤다. 며칠 후에 밥을 먹자고 연락이 왔다.

 

“가니까 마침 차에서 설탕을 내리고 있었어요. 같이 내려주고 나서 저녁을 먹고 나니까 함께 일해보자고 하더라고요.”

 

▲ 문동철 대표(왼쪽)가 초코파이를 만들고 있다.     ©

 

제과 재료 유통하는 회사였다. 2009년 3월 태어나 처음으로 안양에 오게 됐다. 찜질방에서 먹고 자면서 일을 시작했다.

 

“제과 재료가 3,000 가지나 됩니다. 그 시기가 파리바게트와 뚜레쥬르가 우리나라 제과점을 잡아먹는 시기였어요.”

 

거래하다 보니까 파리바게트가 시장을 잠식해 들어온다. 제과점들이 점점 없어진다.

 

“대기업의 횡포가 심해요. 유명한 셰프가 제과점을 하는데 가서 제안합니다. ‘사장님 파리바게트로 바꾸세요.’ ‘난 못바꿔.’ ‘그러면 옆에 차립니다.’ ‘맘대로 해.’ 옆에 파리바게트가 들어오면 하루아침에 그 제과점은 죽어버려요. 제과점 사장들이 파리바게트로 바꿉니다. 우리도 위기의식을 느껴 ‘아 이러면 안되겠다’ 해서 사장님하고 상의해서 ‘K프랜차이즈’를 하자고 했어요. 우리 브랜드인 K프랜차이즈 자재를 납품하면 자급자족이 되니까요.”

 

프랜차이즈 만드는 게 보통일이 아니다. 공장을 설립해야 하고,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 프랜차이즈 계약서, 제품 매뉴얼, 매장 매뉴얼, 기술자 교육 매뉴얼이 다 있어야 한다.

 

“하나하나 배우면서 직접 다 만들었어요.”

 

마케팅은 어떻게 할 거냐 생각했다. 대기업 다닐 때 “앞으로 세상은 사회공헌을 하는 회사가 성공한다”는 교육을 받은 게 생각났다. “사회공헌 마케팅을 하자” 대표에게 제안했다. 대표가 처음에는 망설였으나 “‘기부금 영수증 받아 세금감면 받을 수 있으니 나쁘지 않다”고 설득했다.

 

안양 군포 의왕시청에 전화를 해서 사회복지기업 리스트를 받았다. 케이크를 직접 갖다 주고 “이 케이크는 아주 좋은 겁니다”라고 설명했다.

 

“사회복지 관련된 시설 복지관 보육원 고아원을 다 다녀봤어요. 안양시에서 기관장들을 소개해줬어요. 시에서 많은 도움을 줬지요.”

 

▲ 문동철 대표가 예절강사로서 차 시연을 준비했다.     ©

 

공장이 필요해서 자금 대출을 받아 건물을 하나 회사에서 샀다. 1층은 유통으로 하고 2,3층은 케이크 공장을 만들고, 나머지는 사무실로 쓰면서 한 층을 케이크왕중왕 ‘생활의 달인’에게 5년간 무상으로 빌려줬다.

 

“3월 3일이 납세자의 날이에요. 국세청이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세금을 많이 내는 사람만 포상하는 게 아니라 ‘아름다운 납세자상’이라고 사회공헌 하는 업체에게 상을 주는 게 있었어요. 각 지역 세무서마다 추천해야 될 의무가 있었던 모양이에요. 안양의 세무서가 우리 회사를 추천했어요.”

 

공적조서를 만들어 달라 해서 제출했더니 당시 문동철 대표가 다니던 작은 회사가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제1회 대한민국 행복나눔 사회공헌 대상’에서 ‘심사위원장’상도 받았다. 가맹점도 늘어났다.

 

“6년 6개월 정도 일을 하다보니까 대표님이 경영을 하고 싶은 의지를 보여 내가 나와야 될 상황이 생겼어요. 바로 회사를 그만뒀지요.”

 

문 대표는 새벽에 제일 일찍 출근하고 저녁 가장 늦게 퇴근하는 스타일이다. 회사를 그만 두자 몸에 이상이 왔다. 한림대병원에 119앰뷸런스로 실려 갔다. 쓸개가 굳어 수술 받아야 한다고 했다. 비뇨기과에서 내려오라 해서 가보니까 신장에 혹이 있다며 그게 더 위험하다고 했다. 신장 혹은 선천적인 건지 후천적인 건지 관망을 해보자 해서 쓸개수술만 받았다.

 

“수술실에 들어가는데 저승에 들어가는 느낌이었어요. ‘다음은 없다.’ 그때부터 ‘무슨 일이든 생각이 나면 바로 시행하자’고 결심했지요.”

 

문 대표는 제과 재료회사 다닐 때 무료로 사무실을 빌려줬던 생활의 달인 케이크왕중왕이 초코파이 공장을 한다고 해서 많이 도와줬다.

 

“그분이 기술은 좋은데 행정이 약했어요. 수술 받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그분이 어느 날 자기는 제과점 체질인데 ‘공장은 못하겠다. 공장 인수해라’ 그러는 거예요.”

 

하지만 문 대표에게는 공장을 인수할 돈이 없었다.

 

“안양에서 사회공헌 활동하면서 많은 분들을 만났어요. 그런데 그 분들 중 한 분이 ‘사업을 하셔야 할 것 같다. 사업 자금을 투자하겠다’ 하시는 거예요. 그분의 투자를 받아 공장을 인수하게 됐어요.”

 

초코파이 공장을 인수하고 보니 낡은 건물이라 새로 공사를 했다. ㈜문식품으로 이름도 바꿨다. 이 회사는 고속도로휴게소와 학교 급식이 주거래처였다. 문 대표가 이 회사를 인수한 가장 큰 이유는 일반시장, 온오프라인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 회사에서 생산하는 초코파이는 무방부제 제품이다. 사람들이 먹어보고는 “안 달다”라는 얘기를 제일 먼저 한다. 그런 강점이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신 있게 인수를 한 것이다.

 

▲ 지난 3월 14일 ㈜문식품이 평촌도서관과 기업 독서경영 지원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왼쪽 세 번째 유옥환 평촌도서관장, 네 번째 문동철 대표.     ©

 

“2018년 5월 인수하고 1년 준비 하면서 공사로 공장이 두 달을 쉬었는데 코로나가 왔어요. 엄청 힘들었지요.”

 

조달청 입찰에 참가하기 위해 초콜릿가공품으로 해썹(HACCP, 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 적용업소 인증서도 받았다.

 

예비사회적 기업 인증도 받았다. 봉사활동이 자연스럽게 연계가 되어 취약계층에 일자리 제공을 하다 보니 예비사회적 기업 인증은 어렵지 않게 받을 수 있었다. 문식품은 장애인, 55세 이상 고령자, 보육원 퇴소생 등 일자리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20년 7,8월은 조국사태로 사회가 혼란스러웠다. 언론은 코로나에 몇 명이 감염되었느니 부정적인 얘기만 나왔다.

 

“우리한테 희망이라는 메시지가 없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하다 ‘나의 장점 100가지를 손글씨로 써주면 초코파이 한통을 선물로 주겠다’ 7미터짜리 현수막을 걸었어요.”

 

SNS로도 알렸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응모해왔다.

 

“그분들에게 손글씨로 쓰라는 이유가 있었지요. 타자로 쓰는 것과 손글씨로 쓰는 건 천지차이예요. 이 분들이 처음에는 초코파이 때문에 썼지만 쓰다 보니까 내가 왜 손으로 쓰라는지 알게 되는 거예요. ‘써보니까 자존감이 선다. 내가 이렇게 긍정적인 사람, 내가 이렇게 좋은 사람이었나? 힘이 솟구친다’는 거였어요.”

 

그분들이 문 대표에게 ‘너무 고맙다’고 보내온 글들이 많다. 책으로 두 권 분량이 됐다. 한권은 KBS방송국에서 방송한다고 가져가 잃어버렸다. 일곱 살부터 80살 어르신까지 보내왔다. 청각장애인이 쓴 것도 있다.

 

문 대표는 올해로 4년째 회사를 운영을 하고 있다. 여러 가지 활동을 하지만 아직도 부족하다고 느껴서 많이 배우려고 한다. 교육을 많이 받는다. 올해 대학원 4학기다. 4차산업 경영 컨설팅을 주제로 논문을 써야 한다.

 

“2009년도에 4월인가 5월에 노사재취업센터에서 연락이 왔어요. 노동법률이라는 잡지에 ‘고용이 희망’이라는 연재 기획기사가 있는데 거기에 내 이야기를 연재를 하겠다는 거예요. 2009년 6월호 노동법률에 실렸지요. 내가 살아온 이야기, 직장 다니는 이야기, 취업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했어요.”

 

▲ 문식품이 생산 판 매하는 수제 초코파이.     ©

 

언제부터인지 문동철 대표는 교육 쪽에 연결이 많이 됐다.

 

“3개월 케이크 디자이너과정을 열면서 경력단절 여성을 뽑아 케이크 교육 팀을 하나 만들었어요. 수업을 우리가 직접 하게 된 거지요.”

 

대기업 명퇴자를 대상으로 ‘중소기업의 이해’라는 제목으로 강의도 했다. 수술받고 쉬는 동안에는 예절교육관 교육을 받고 안양시 강사자격을 취득했다. 안양시 예절 강사, 한국지역사회교육협의회에 인문지도자 강사 겸 이사다. 차 교육, 예절 교육도 한다. 크리스토퍼라는 단체에서 리더십 강의도 했다.

 

“사업은 언제 하느냐 하지만 이게 다 사업이고 홍보예요. 다양한 사람, 다양한 계층에 있는 분들에게 제품 이야기를 하는 거죠.”

 

문 대표가 하는 강의 내용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가 제일 좋아하는 말은 ‘하심(下心)’이다. “마음을 낮추는 거예요. ‘입차문래(入此門來) 막존지해(莫存知解), 이문에 들어올 때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버려라.’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나이라는 거와 내가 가지고 있던 그동안의 경험치라든가 배웠던 지식, 가지고 있는 것 때문에 내가 누군가를 만날 때 그게 걸림돌이 됩니다. 비우지를 못해요. 그걸 내려놓아야 한다는 거지요”

 

이것이 문동철 대표가 처음 안양에 왔을 때 가졌던 마음자세였다.

 

“‘이제는 봉사하는 인생을 살아야 하겠다.’ 안양에 들어서면서 가졌던 마음이에요. 노동법률에 인터뷰를 할 때도 그말을 했어요. 지금도 나는 그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문식품을 홍보 하려고 2019년도에 노동법률에 전화를 했다.

 

“10년 뒤 내 모습을 취재해 볼 생각 없느냐 했더니 좋아 하더군요. 인생 3모작을 사는 사람으로 기사가 나왔어요.”

 

1모작은 대기업 직장, 2모작은 대기업 퇴사하고 나서 중소기업 근무, 3모작은 자영업자로 사업을 하는 것. <“퇴직하면 대기업 병풍 없다”…인생 3모작 성공 노하우는>이라는 제목으로

 

노동벌률 2020년 6월호에 기사가 실려 있다.

 

“안양에 온 게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처음에는 어디가 어딘지 몰라 바보가 된 기분이었어요. 봉사활동을 하면서 진짜 많은 분들 알게 되고 그분들 도움을 받았어요. 강의를 나가면 명퇴자들에게 봉사활동을 하라고 합니다. 봉사활동을 하다보면 열심히 하는 사람들에게 ‘뭔 일 했습니까’ 물어봅니다. ‘이런 일했습니다’ 하면 연관된 일이 있을 때 나중에 연락이 오게 됩니다.”

 

사람은 내가 먼저 손을 내밀고 내가 먼저 다가가야지 남이 해줄 수는 없다. 문동철 대표는 일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다. 그가 회사를 사회적 기업으로 키우고자 하는 이유는 첫째, 나이가 들어도 평생 일할 수 있는 직장이 필요하다 생각하기 때문이고, 둘째, 회사가 잘 돼서 혹시나 다른 이상한 마음이 들 때 스스로를 경계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야 하겠다 해서다.

 

“사회적 기업으로 해서 돈보다는 오래 함께 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문동철 대표(오른쪽)가 주례로서 회혼례를 집전하고 기념촬영을 했다.     ©

 

문식품이 생산하는 수제초코파이는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 매장 안에서 판매된다. 문식품이 고속도로 휴게소 식품을 유통하는 회사에 납품해 주면 그 회사가 함께 유통해준다. “학교급식도 했어요. 그런데 학교급식은 코로나 때문에 3년째 제로입니다.”

 

문식품은 학교급식을 직접 해보려고 준비 중에 있다. 제품도 개발하고 있는 중이다.

 

문식품은 지난 3월 평촌도서관과 기업 독서경영 지원을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

 

“독서경영이 뭘까요. 이 회사 하고 나서 얼마 안 있다가 주민센터 안에 있는 도서관인데 만안구의 작은도서관 하나가 폐관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회사에 도서관을 하나 꾸미고 싶다 해서 책을 기부 받아 도서관을 꾸렸어요.”

 

문 대표는 식품이 감성적인 상품이라고 생각한다. 제품을 만들 때 내 진심이 담기지 않으면 아무리 예쁜 제품도 맛이 없다.

 

“나는 이상적인 걸 추구하는 스타일이에요. 음식은 정성이 제일 중요해요. 아무리 다량으로 만든다고 해도 생산을 맡은 사람들의 마음이 중요해요. 생산자들의 정성을 가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인문학적 소양도 있어야 하고 지식함양도 필요합니다. 요즈음 ESG경영이라는 게 중요한 화두잖아요. 그런 걸 위해서 직원들과 독서토론도 좀 해야 되겠고, 회사 발전을 위해 독서를 식품과 접목을 해보자 해서 평촌도서관장에게 부탁을 했어요. 흔쾌히 좋다고 해주셔서 도서관의 도움도 받고 우리끼리 여러 가지 하고 있어요.”

 

문식품은 작은 공간이지만 회사 도서관을 누구에게나 개방한다. 독서토론 하는 사람들 와서 초코파이 맛도 보고 다양한 계층 만나서 협업하는 게 좋다. 사람 살아가는 맛이 있어야지 사람 맛이 없으면 재미가 없다. 평촌도서관장은 책 지원도 해주고 독서에 관련된 삶의 질 향상에 대한 특강을 해준다.

 

“회사가 아무리 잘 나가면 뭘 합니까. 직원이 같이 성장하지 않으면 안돼요. 협약식 하는 날 도서관 전반에 관한 이야기, 책에 대한 이야기 등으로 평촌도서관장이 강의를 한 번 했어요. ‘한권을 다 읽으려면 너무 힘드니 독서에 대한 이야기를 쪽지로 적어서라도 서로서로 교감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얘길 해줬어요.”

 

문동철 대표는 최근 경기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나눔이 있어 다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계층 간의 차이가 너무 많이 난다고 생각한다. 소득의 불균형, 빈익빈 부익부가 심해졌다.

 

“나같이 없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일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 봉사를 함으로써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그런 사람을 모으는 일입니다. 더불어 산다는 것은 사회통합을 말하는 겁니다. 서로서로 사람들의 마음을 한마음으로 모으는 게 더불어 사는 거죠. 한마음으로 모을 때 좋은 마음으로 모으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옛날이 더 좋았다 그럽니다. 그 때는 서로 나눌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옆집에 문제가 생기면 나누고 걱정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그런 게 너무 부족하지요. 경제적으로 발전하면 뭐하나요. 성적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런 게 중요한데 국가가 그런 교육을 먼저 시켜야 하지 않을까요?”

 

문동철 대표의 당면 목표는 예비 사회적 기업에서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매출활성화가 제일 급하다.

 

“문식품은 좋은 제품, 건강한 제품, 바른 먹거리를 주창합니다. 그런 제품들을 생산해 우리 식생활 개선에 앞장서는 회사를 만들고 싶어요. 문식품 하면 좋은 제품을 만드는 회사로 다가갔으면 좋겠어요. ‘문식품은 매출액의 많은 부분을 줗은 일에 쓰는 회사다’ 소비자들에게 이렇게 인식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많은 분들이 서로 동참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 ㈜문식품 문동철 대표(가운데)가 사회공헌을 활동을 활발히 한 공로를 인정받아 최대호 안양시장(오른쪽)으로부터 표창장을 받았다.     ©

 

아래는 위 기사를 ‘Google 번역’으로 번역, 일부 수정한 영문 기사의 ‘전문’이다. ‘Google 번역’은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영문 번역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전제로 한다.

<*The following is [the full text] of the English article translated by ‘Google Translate’ and amended. ‘Google Translate’ is working hard to improve understanding. It is assumed that there may be errors in the English translation.>

 

[Our Anyang! This person!] Moon Foods Co., Ltd.

CEO Moon Dong-cheol

 

“What if a company does well? Employees should grow

together... ”

 

Anyang Gunpo Uiwang Gwacheon Weekly Hyundai Newspaper celebrated its 14th anniversary. In the editorial of this year's New Year's issue, this paper said that it would announce a groundbreaking ground improvement plan starting from the 14th anniversary of its founding, but it became difficult to announce an innovative ground improvement plan due to the fact that those in charge of the work became infected with Corona 19. With a promise to take more time and continuously make efforts to improve the ground, first, ‘Our Anyang! This person!' I would like to start a character exploration series that discovers and reports 'this person who makes Anyang a happier Anyang, and makes Anyang citizens a little happier'. The first person to be published in this issue is Dong-cheol Moon, president of Moon Foods Co., Ltd., which produces and sells luxury handmade chocolate pie in Hogye-dong, Anyang-si. This series is also planned to be applied to Gunpo, Uiwang, and Gwacheon.<Editor>

 

Moon Foods Co., Ltd. CEO Moon Dong-cheol met at the Mun Foods company office on March 22nd. Moon Foods is a company that produces and sells handmade Choco Pie. Choco Pie made by Moon Food is sold at highway service area supermarkets.

 

As soon as CEO Moon Dong-cheol met the reporter, he said, “I have lived a turbulent life,” and he endlessly told the story of his life.

 

He had 19 years of work at a large corporation until he was in his 30s. In a way, he left the business world and went through a lot of hardships as a high school graduate. He went to college at the age of 39. At 43, he graduated from the Department of Social Work, leaving the company the year he graduated. A bond guarantee incident occurred among his executives, and he became the victim of the incident. Due to bankruptcy, he became a person with bad credit, received psychiatric treatment, and even became a recipient of basic livelihood. The military shooter entered the temple where he was the governor. It was a kind of escape.

 

“If I think about it now, I am young, but I didn’t think of that at the time. It was a time when I was very worried about whether I should live or not because the shock I received was so great.”

 

Even life in the temple was not easy. He went down to his house in Busan because he had to work silently while working hard because he moved the temple, and he had to be discharged from bankruptcy. He went home because he wanted to see the work and the children. My eldest child was in high school or 3rd grade. He ordered a whole chicken and ate it. He ate deliciously and got on the bus to go to Ganghwa Island, where there is a temple, but his pocket was strange and when he touched it, there was money in it. His son had put the price of the whole chicken in secret.

 

“I cried until my tears came to the temple. That evening he thought a lot. ‘Even if I can’t be a good dad, I can’t be a shy dad any more, even for the sake of my children… … .’”

 

In the second half of 2008, I was 47 years old. He came down from the temple and sent hundreds of resumes to get his job. Then he went to a place called the Labor Reemployment Center in Yeouido and received education.

 

“It was a place to educate people who have retired from large corporations. I was assigned a 1:1 matching consultant and applied for a job change.”

 

He was trained for 3 months and received a lot of help from the consultant in charge.

 

“Among the people he met, he said that I was a very special person.”

 

I went to a temple and was cut off from the world, and I felt like a fool, not knowing what to do with the gap of five years. I started learning how to write a resume.

 

Then, there was an announcement that a small distribution company in Anyang was hiring people. was in Pyeongchon. He had a clue that he was under 45, but a bureaucrat who had been in the business called, "I'm 48, can I have an interview?" He asked me to come and see, so I had a two-hour interview. A few days later, he called to eat.

 

“I was just unloading sugar from the car when I left. After dropping them off together and having dinner, they said that we should work together.”

 

It was a confectionery material distribution company. I was born in March 2009 and came to Anyang for the first time. I started working while eating and sleeping in the jjimjilbang.

 

“There are 3,000 kinds of confectionery ingredients. That was the time when Paris Baguette and Tous Les Jours ate up Korean bakeries.”

 

As they trade, Paris Baguette invades the market. Bakeries are disappearing.

 

“The tyranny of large corporations is severe. A famous chef runs a bakery and makes a suggestion. ‘Chairman, change it to Paris Baguette.’ ‘I can’t change it.’ ‘Then I have it next to me.’ ‘Do whatever you want.’ When a Paris Baguette comes in, the bakery dies overnight. Bakery owners turn to Paris Baguette. We also felt a sense of crisis, so we said, 'Oh, I can't do this', so we talked with the boss and decided to start a 'K Franchise'. We become self-sufficient when we supply our brand K franchise materials.”

 

Franchising is not an ordinary thing. You have to set up a factory and make a manual. You must have a franchise agreement, product manual, store manual, and technician training manual.

 

“I made them all by myself while learning each one.”

 

I was thinking about how to do marketing. She remembered that she was educated when she was attending a large corporation, saying, “In the future, a company that contributes to society will succeed.” “Let’s do social contribution marketing” was suggested to the CEO. The CEO was hesitant at first, but persuaded him, saying, “It’s not bad because you can receive a donation receipt and get a tax reduction.”

 

I called Anyang Gunpo Uiwang City Hall and received a list of social welfare companies. He brought the cake himself and explained, “This cake is very good.”

 

“I have been to all social welfare facilities, welfare centers, nurseries, orphanages. Anyang City introduced the head of the agency. The city has helped me a lot.”

 

I needed a factory, so I got a loan and bought a building from the company. The first floor was for distribution, the second and third floors were made for a cake factory, and the rest were used as offices.

 

“March 3 is taxpayer’s day. In order to improve the image of the National Tax Service, it is not only rewarding those who pay a lot of tax, but also giving a prize to a company that contributes to society called the ‘Beautiful Taxpayer Award’. It seems that each local tax office had an obligation to make a recommendation. The tax office in Anyang recommended our company.”

 

When I asked to make an official report, I submitted it, and the small company that Moon Dong-cheol worked for at the time was awarded the Prime Minister's Commendation. It also received the ‘Judge Chairman’ award at the ‘1st Korea Happiness Sharing Social Contribution Grand Prize’. The number of stores also increased.

 

“After working for about 6 years and 6 months, the CEO showed his will to run a business, so I had to leave. I left the company right away.”

 

CEO Moon has a style of going to work early in the morning and leaving work late in the evening. When he left the company, something went wrong with his body. He was taken by ambulance to Hallym University Hospital. He said he had a hardened gallbladder and needed surgery. He told me to come down from the urology department, and when I went, he said there was a lump in the kidney, and that it was more dangerous. He only had gallbladder surgery to see if it was kidney or congenital or acquired.

 

“When I entered the operating room, it felt like I was entering the underworld. ‘There is no next time.’ From that moment on, I decided, ‘If something comes to mind, let’s do it right away.’”

 

CEO Moon helped a lot when he heard that Cake Wang Jung Wang, a master of life who rented an office for free while working at a confectionery material company, was running a chocolate pie factory.

 

“He had good skills, but his administration was weak. He is reading a book in the library after surgery, and one day he says, ‘I can’t do a factory because I am a baker. Take over the factory’.”

 

However, CEO Moon did not have the money to take over the factory.

 

“I met a lot of people while doing social contribution activities in Anyang. But one of them said, ‘I think you should start a business. You are saying, ‘I will invest my business funds’. He took over the factory with his investment.”

 

When I took over the Choco Pie factory, I realized that it was an old building, so I had to build a new one. The name was changed to Moon Foods Co., Ltd. The company's main customers were highway rest areas and school lunches. The biggest reason why CEO Moon took over this company was because he had confidence that he could pioneer the general market and online and offline markets. The Choco Pie produced by this company is a preservative-free product. When people try it, the first thing they say is "it's not sweet". Knowing that there is such a strength, he confidently took over.

 

“After taking over in May 2018 and preparing for a year, the factory took two months off due to construction, but Corona came. It was very difficult.”

 

In order to participate in the Public Procurement Service bidding, it also received a certificate of HACCP (HACCP, Food Safety Management Certification) applied business as a chocolate processed product.

 

It was also certified as a preliminary social enterprise. His volunteer work was naturally linked and he provided jobs to the underprivileged, so it was not difficult to receive a preliminary social enterprise certification. Moon Food provides jobs to the disadvantaged class, such as the disabled, the elderly over 55, and those who have left the orphanage.

 

In July and August of 2020, society was in chaos due to the national crisis. The media only spoke negatively about how many people were infected with Corona.

 

“There was no message of hope for us. I was thinking about what I could do, and I hung up a 7-meter banner that said, ‘If you handwrite 100 of my strengths, I will give you a box of Choco Pie’.”

 

It was also announced on social media. The reaction was explosive. Many people from all over the country applied.

 

“They had a reason to write by hand. There is a difference between writing with a typewriter and writing with handwriting. These people wrote it for Choco Pie at first, but as you use it, you come to understand why I use it by hand. ‘When I write it, my self-esteem stands up. Am I such a positive person, was I such a good person? It was saying, ‘The power is soaring.’”

 

There are many messages that they sent to CEO Moon to say ‘thank you so much’. The book was divided into two volumes. One copy was taken and lost because it was broadcast on KBS. We sent people from seven to 80 years old. It was also written by a deaf person.

 

CEO Moon has been running the company for 4 years this year. He has a lot of different activities, but he still feels like he's lacking, so he tries to learn a lot. He gets a lot of education. He is in his fourth semester of graduate school this year. He has to write a thesis on the topic of 4th industry management consulting.

 

 

 

“In April or May of 2009, I received a call from the Labor-Management Reemployment Center. In a magazine called Labor Law, there is a serialized article titled 'Employment is Hope', and they said that I would like to serialize my story there. It was published in the Labor Law in the June 2009 issue. I mainly talked about my life, my work, and finding a job.”

 

Since when, CEO Moon Dong-cheol has had a lot of connections to education.

 

“During the three-month cake designer course, we recruited women who had a career break and created a cake education team. We were able to teach the class ourselves.”

 

She also gave a lecture titled ‘Understanding Small and Medium Enterprises’ for retirees from large corporations. While she was taking a break from surgery, she received an education at the Etiquette Training Center and obtained a license as an instructor in Anyang City. She is Anyang City Etiquette Lecturer, Humanities Leader Lecturer and Director at the Korean Community Education Council. She also teaches tea and etiquette. She also lectured on leadership at an organization called Christopher.

 

“When do you start a business, but this is all business and publicity. It’s about talking about products to different people and people from all walks of life.”

 

Although there are many lectures on the subject of President Moon, his favorite word is “heart”. “It’s about lowering your mind. ‘Imchamunrae (入此門來), the greatest wisdom (莫存知解), throw away everything I know when entering this gate.’ What I have is a stumbling block when I meet someone. can't empty it You have to put it down.”

 

This was the attitude of mind that CEO Moon Dong-cheol had when he first came to Anyang.

 

“‘Now I have to live a life of service.’ This is the feeling I had when I moved to Anyang. He said the same thing when interviewing labor law. Even now, I live with that heart.”

 

I called the Labor Law in 2019 to promote Moon Food.

 

“I asked if he would like to cover my appearance in 10 years, and he said yes. The article came out as a person who lives three lives.”

 

The first model is to work at a large company, the second model is to work for a small business after leaving a large company, and the third model is to run a business as a self-employed person. <“When I retire, there will be no folding screen for large corporations”… The know-how for success in life's three models>

 

There is an article in the June 2020 issue of the Labor Penalty Rate.

 

“I think I was lucky to come to Anyang. At first, I felt like a fool not knowing where I was. I got to know a lot of people while doing volunteer work and they helped me. When I leave a lecture, I tell the retired people to do volunteer work. When I do volunteer work, I ask hard-working people, ‘What did you do?’ If you say ‘I did this,’ you will be contacted later when there is something related.”

 

As for people, I have to reach out my hand first, and I have to approach it first, and no one else can do it for me. CEO Moon Dong-cheol is well aware of the importance of work. The reason he wants to develop the company as a social enterprise is that first, he thinks that he needs a job where he can work for the rest of his life even when he is old. because I have to make it.

 

“As a social enterprise, I think it is more important to create a company that we can work with for a long time than money.”

 

Homemade Choco Pie produced by Moon Foods is sold inside highway rest areas across the country. If Moon Foods delivers food to a company that distributes food for highway rest areas, the company distributes it together. “I also had school lunch. But school lunches have been zero for 3 years because of the corona virus.”

 

Moon Food is preparing to try school lunch by itself. The product is also being developed.

 

In March, Mun Food signed an agreement with Pyeongchon Library to support corporate reading management.

 

“What is reading management? Shortly after leaving this company, I found out that a small library in Manan-gu, which is a library inside the community center, is closing. I wanted to decorate a library at the company, so I opened a library by donating books.”

 

CEO Moon thinks that food is an emotional product. No matter how beautiful a product is, if I don't put my sincerity into making a product, it won't taste good.

 

“I am a style that pursues the ideal. Food is the most important thing. No matter how large a quantity is made, the mind of the people in charge of production is important. What should be done to cultivate the sincerity of producers? You must also have humanities literacy, and you also need to cultivate knowledge. ESG management is an important topic these days. For that, I had to have a reading discussion with the staff, and I asked the head of the Pyeongchon Library to try to combine reading with food for the development of the company. They gladly said they liked it, so we got help from the library and we are doing various things together.”

 

Although Munfood is a small space, the company library is open to anyone. It's good to have people discussing reading, come and taste Choco Pie, meet and collaborate with various classes. There must be a taste for human life, and without human taste, there is no fun. The head of the Pyeongchon Library also provides book support and gives special lectures on improving the quality of life related to reading.

 

“What if a company does well? Employees must grow together. On the day of the signing ceremony, the head of the Pyeongchon Library gave a lecture about the library in general and books. ‘It’s too hard to read all the books, so it’s important to communicate with each other even by writing a note about reading,’ she said.”

 

CEO Moon Dong-cheol said in an interview with the Gyeonggi Shimbun recently, “I was able to start over because of sharing.” He thinks that the world we live in has too many hierarchical differences. Income inequality, the poor, the poor, the rich have worsened.

 

“What people who don’t have like me can do is to gather people who can work together, who can share with others through service. Living together means social cohesion. Living together is to bring people's hearts to one another. When gathering with one mind, collecting with a good heart is the most important. A lot of people say the old days were better. Because back then, we could share it with each other. If the next door neighbor had a problem, we shared it and worried about it, but now that's not enough. What do you do when you grow economically? It's not the grades that matter, but these things, shouldn't the state provide such education first?"

 

The immediate goal of CEO Moon Dong-cheol is to transform from a preliminary social enterprise to a social enterprise. Sales growth is the most urgent.

 

“Moon Foods advocates good products, healthy products, and good food. I want to create a company that takes the lead in improving our eating habits by producing such products. When it comes to Mun Foods, I would like to approach a company that makes good products. ‘Moon Foods is a company that spends a large part of its sales on making money.’ I hope it can be recognized by consumers like this. I hope that many people will particip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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