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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양 이사람!]③ 이원균 (사)찾아가는박물관 관장
“아무 것도 나누지 말고 오직 마음만 나누며 살고 싶어요”
시(詩) 서(書) 화(畵) 각(刻)…동양 정신의 핵이 전각에 담겨 있어
기사입력  2022/08/21 [22:17] 최종편집    강성봉 기자

▲ 이원균 (사)찾아가는박물관 관장     ©

 

주간현대신문/경기브레이크뉴스가 창간 14주년을 기점으로 시작한 인물탐방시리즈 “안양을 좀 더 행복한 안양으로, 안양 시민을 좀 더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우리 안양! 이 사람!’”의 세 번째 인물은 이원균 (사)찾아가는박물관 관장이다. 이 관장은 자신이 평생에 걸쳐 수집한 유물을 소장 전시하는 안양시 최초의 사립 박물관 ‘원박물관’을 설립했으나 현재는 주소지를 집으로 옮겨 전시는 하지 못하고 유물을 보관만 하고 있는 상태이며, 자신의 유물들을 보기 원하는 사람, 기관을 찾아다니며 전시하고 해설까지 해주는 문자 그대로 ‘찾아가는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안양예술공원에 ‘갤러리 카페 작은 박물관’을 운영한 적도 있다.

 

이원균 관장을 지난 7월 19일 안양예술공원에 있는 (사)찾아가는박물관 전시실에서 만났다.

 

원박물관은 안양에서 최초로 설립된 사립 박물관이다. 이원균 관장이 원박물관을 개설했을 때가 이명박 정부 시절이었다. 이 관장은 ‘1,000원의 행복’을 표방하며 입장료를 1,000원으로 정했다. 그런데 당시 유인촌 문화부장관이 전국의 국공립박물관을 무료로 개방했다. 그 바람에 1,000원의 입장료도 받지 못하게 되고, 원박물관을 작은 박물관으로 갤러리 카페로 바꿨다. 박물관을 하겠다는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결국은 힘들어졌다. 제주도에서 누가 초청을 해서 제주도에도 내려가 봤다. 제주도에서는 무인 박물관을 하다가 다시 안양으로 올라왔다. 많은 유물들이 미아 상태다. 전시할 곳을 찾아야 하는데 마땅한 곳이 없다. 큰 유물은 다 집에 있다.

 

유물을 그냥 두기 아까워 마음 맞는 친구들과 사단법인으로 ‘찾아가는박물관’을 설립했다.

 

“30대 초반이었을 때니까 27, 8년 전이네요. 버스를 한 대 빌리고 치과하는 친구가 학용품을 사고, 대기업에 임원으로 있던 친구가 후원금을 대고 해서 세 명이 중심이 돼서 후배들 데리고 전체 학생 수 40명인 영월에 있는 거의 폐교 직전의 초등학교, 영월군 수주면 운학리의 운학초등학교로 버스에 공룡이빨 공룡알 이런 유물을 다 싣고 간 게 시작이었어요.”

 

그 학교는 현재는 폐교됐다. 그렇게 시작한 게 사단법인 ‘찾아가는 박물관’이 됐다. 하다 보니까 자신의 행복을 찾기 위해서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사)찾아가는 박물관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한 사람을 위한 전시도 한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에 대통령의 명으로 20대 초반에 미국에 가서 우리나라에 차관을 들여오신 분으로 이진수 박사란 분이 계시다. 나라를 위해 수고하신 분이라 보고 그분을 찾아가서 그분만을 위한 ‘찾아가는 박물관’을 했다.

 

파주시 법원읍에서 무궁화고시원을 운영하시는 분이 있다. 산속에 있는 무릉도원 같은 고시원이다. 거기에 들어오면 공부 외에는 아무것도 못 한다. 제언수 법원 이장님이신데 그 이장님이 거기서 40명 정도의 고시 합격자를 배출했다. 이런 분들이 우리나라의 애국자이시고 숨어서 일하는 분들이라고 생각했다. 행복하시라고 그분만을 위해서 처음으로 전각을 가지고 갔다.

 

“제가 가지고 있는 유물 중 최고의 유물이 전각이에요. 중국에서 전각으로 가장 유명한 분 중 한 분으로 정경이란 분이 있는데 그분의 작품 3점을 비롯해 등석여, 오창석, 황목보 조고니 황역 등의 작품을 한 60점 정도 가지고 있어요. 제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자랑할 만한 작품입니다.”

 

이원균 관장에게는 세상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하고 바라는 게 바로 전각이다. 그건 온리 완(only one)이기 때문에 그렇다. 정경의 작품은 전 세계에 5 작품이 있는데 두 개가 중국에 있고, 이 관장이 3점을 보유하고 있다.

▲ 이원균 관장이 소장한 전각들. 뒷줄 오른쪽 두 번째부터 3점이 정경의 작품이다.     ©

 

“정경의 작품 3점은 전 세계에서 오직 저만 가지고 있는 거예요. 보통 시(詩) 서(書) 화(畵)를 말하는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시(詩) 서(書) 화(畵) 각(刻)이에요. 그게 동양의 핵입니다. 우리 정신의 핵이 바로 전각에 담겨 있는 거예요.”

 

이원균 관장은 유물을 1,600점 정도 가지고 있어서 일 년 내내 전시를 할 수도 있다. 얼마 전에도 강남 인터콘티넨탈 호텔에 초청받아서 메인 전시로 참여했다. 국회의원도 8명 나오는 행사에서 전시회를 하고 도장을 찍어주는 퍼포먼스를 했다.

 

“사업가들에게는 마음먹은 대로 다 되라고 여의(如意)라는 전각을 찍어줍니다, 연세 드신 분들이 계시면 오래 사시라고 영수(永壽)를 찍어드립니다. 인생을 즐겁게 살고자 하시는 분들은 인생일락(人生一樂)이란 전각을 찍어드립니다”

 

한중일은 같은 서예문화로서 동양의 핵이다. 그 핵 중에 서예가 있고, 문인의 시서화의 마지막에 전각이 있다. 그래서 명청 때부터 전각의 계보도가 있다. 정경은 1695년에 태어나서 1765년까지 살았다. 거의 300년 전이다. 정경은 도법(刀法)에 일가를 이루어 전각의 유파 중 절파(浙派)의 개산조(開山祖)가 되었다.

 

이원균 관장은 전각을 수집하면서 공부를 더 하게 됐다. 수집가는 공부 안 할 수 없다. 자기가 수집한 걸 자기가 모르면 의미가 하나도 없다. 어떤 사람들은 땅 사고 증권하고 그런 거 하면 돈을 더 벌 텐데 그 돈 갖고 왜 이런 걸 미친 사람처럼 모으냐고 한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어요. 세상 사람들이 돈을 쫓아가고 현실에 맞춰가지만 저는 증권도 모르고 부동산도 몰라요. 어떻게 보면 바보죠. 현실에서는 바보지만 세상을 사는 어떤 이치에서는 바보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돈으로 배운 것보다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가는데 엄청 더 많은 것을 배웠기 때문이지요. 진짜 하고 싶은 얘기가 그겁니다. 유물을 수집하면서 유물을 알기 위해 공부하면서 저 스스로가 성장했다는 거지요.”

 

▲ 이원균 관장이 기자에게 선물하기 위해 전각을 책에 찍고 있다. 이 관장이 기자에게 찍어준 전각은 인생일락, 칠십옹 등이었다.     ©

 

이원균 관장이 소장하고 있는 전각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이 찾아온다. 시서화가 연결되기 때문에 서예 하는 사람이 많이 온다. 중요한 건 전각이라는 건 다 끝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각을 할 수 있다. 그림도 마지막에 인장에 아호와 자기 이름을 찍듯이. 그런데 이 전각은 더 중요한 게 있다. 쩨쩨하게 자기 이름을 남기는 게 아니다. 선인들은 자기 인생의 모든 것을 전각에 담아 남겼다. 자기가 세상에서 남기고 싶은 두 글자, 그런 걸 거기에 새긴다. 인생에서 남기고 싶은 두 글자, 그걸 옥에 새긴다. 붓은 곡선이지만 칼은 직선이다.

 

“자신의 공부가 최고의 경지에 올라갔을 때, ‘시경에서 최고의 두 자를 남겨라’ 그러면 최고의 두 자를 전각에 새기는 거예요. 오창석이라는 분은 대아(大雅)라는 글자를 남겼어요. 정경 선생은 하늘이 주는 복록(福祿)이라는 뜻으로 천록(天祿), 공손하게 글을 배우며 오래도록 복을 누리라는 뜻으로 공즉수(恭則壽), 항상 배움으로 장수를 누리라는 뜻으로 학서연수(學書延壽) 이렇게 세 가지를 새겼어요.”

 

그게 정경 작품이다. 정경의 전각의 겉에 새긴 연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연꽃잎 안에 연밥이 좍 피어나는 게 있다. 하나는 연꽃 안에 들어가 있고, 하나는 하늘에 닿아 있다. 그림으로 시로 서로 시서화로 마지막에 각으로 이 깊이가 끝이 없다.

 

이원균 관장은 설승(雪塍)이라는 말을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눈설 자에 밭두둑 승자다. ‘눈 내린 밭두둑’, 아무 경계도 없고 어떤 나눔도 없는 경지. 이 관장이 소장하고 있는 한 전각에 새겨진 글자다.

 

“설승, 눈 내린 밭두둑. 누구의 말인지도 모르겠어요. 관념과 이해관계로 나누어진 경계가 사라지기를 바라는 장인의 마음이 담겨 있어요. ‘아무것도 나누지 말고 오직 마음만 나눠라.’ 제가 꿈꾸는 사회입니다.”

 

70옹(七十翁)이란 전각도 있다. 빨간 노을이 비치는 옥에다가 70옹이라고 새겼다. 그걸 보고 있으면 하루의 저녁이다. 노을 지는 계절은 가을이다. 인생은 70이다. 가장 멋진 시기다. 곡즉전이라고 한다. 70옹, 몸은 60에 굽어지지만 정신은 70에 굽어진다. 제일 빛나는 게 70이다. 이원균 관장이 보기엔 그렇다. 정신의 꽃은 70이다.

 

부진즉퇴(不進卽退)라고 새긴 것도 있다. 머무는 것조차도 퇴보다. 이백의 시부터 시작해서 두보의 시까지 손톱만 한 데 200자까지 새긴다.

▲ 이원균 관장이 제주에서 무인박물관을 할 때 당삼채로 만든 커다란 말을 전시했다. 어느 날 그 삼채마 앞에 이 그림이 놓여 있었다. 그림에 글이 적혀 있다. “바쁘고 험한 일상에서 자유와 안식의 틈으로 들어온 것 같습니다. 잘 쉬다 갑니다.” 이심전심이랄까 이 관장이 무인박물관을 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 적혀 있었다.     ©

 

이원균 관장은 공대를 졸업하고 87년에 삼성본관에 있던 주식회사 세중의 해외여행 사업부에들어갔다. 세중에 근무하는 6년 동안 50여 개국을 다니면서 유물에 눈이 뜨였다. 해외여행 마지막 코스가 대만이었다. 기후 안 좋고 습하고 아무것도 볼 거 없는 나라지만 대만 고궁 국립박물관에는 전 세계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옥비취, 쌀에 조각한 걸 보러 전 세계 사람들이 오는 걸 보고 ‘어’ 했어요. 유물의 중요성을 깨닫고 수집을 시작하게 된 거지요. 지금은 돈도 없고 물건도 없어요. 미친놈하고 살아줘서 아내가 고맙죠. 노후 준비를 따로 하진 않았지만 어디에 가도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지 않은 걸 가지고 있다는 것이 노후준비 아닐까요?”

 

이원균 관장은 문화도시 안양을 위해서 한마디 조언을 했다.

 

“안양이 가지고 있는 것을 가장 안양답게 만드는 게 안양의 문화 아닐까요? 그런데 ‘답게’ 만든다는 게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문화를 좋아하고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안양다움’을 끊임없이 폭발적으로 만들어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저도 그 한 부분이죠.”

 

이 관장이 보기에 모든 것이 아직은 이해관계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문화가 끼어들 틈이 많지 않다. 진정한 문화인들은 숨는 것 같기도 하다. 그게 아쉽다.

 

“그런 사람들을 끄집어낼 수 있는 안양이 됐으면 좋겠어요.”

▲ 이원균 관장이 시서화각을 소개하는 판넬 앞에 서 있다.     ©

 

 

이 관장은 자신이 안양의 문화발전을 위해서 어떤 방식으로 기여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한다.

 

“제가 서 있는 곳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면 되지 않을까요? 우선 청소년들에게 옛것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싶어요. 도자기다, 전각이다, 대나무다, 토기다, 그림이다, 유물이다 나누지 않고 그 어떤 것도 예술품이라면 거기서 나오는 정신이 있기 때문에 예술가들의 정신을 청소년들에게 전달해주고 싶어요.”

 

이어서 이원균 관장은 자신의 전시 철학을 피력했다.

 

“원박물관의 전시의 화두는 관(觀), 심(心), 사(思), 감(感)이이에요. 보고, 느끼고, 마음을 담고, 생각하는 일이야말로 인생의 아름다움을 이끄는 요소죠. 눈으로 보는 관, 마음으로 보는 관, 생각으로 보는 관, 감은 느끼는 것, 손으로 보는 관이에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하는데 백행이 불여일각이에요. ‘백번 행하는 것보다 한번 깨우치는 게 낫다.’ 깨우침이 들어가 있는 것이 전각(篆刻)으로 정신의 사리라고 말할 수 있어요.”

 

이원균 관장은 앞으로 전각 전시회를 제대로 한 번 여는 것을 필생의 화두로 삼고 있다.

 

“돈이 몇천만 원이 들어요. 지금은 그렇게 많은 돈을 들여 전시를 하기는 어렵고 당분간은 찾아가는 박물관 위주로 할 계획입니다. 기업이나 누가 후원을 해주면 저는 거기를 홍보해 주고, 전시를 해서 전각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요. 전각의 가치도 키우고, 그러면 서로가 좋겠어요. 저만 좋은 건 양심상 못하겠어요. 서로가 좋으면 좋겠어요.”

 

이원균 관장이 어느 날 유물에게 물어봤다.

 

“‘너 왜, 왜 나한테 왔어?’ 답을 해주더군요. ‘네가 나를 제일 좋아하잖아.’ 내가 유물을 가진 것이 아니라 유물이 나를 취한 거예요. 저는 유물보다 유한하잖아요. 잠시 제가 그 유물들을 향유하는 호사를 누리는 거죠.”

▲ 이원균 관장이 전 세계 6점 밖에 없는 사족토기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삼족토기는 1만6,000점 정도 된다. 사족토기는 남성 여성의 심벌을 상징한다.     ©

▲ 이원균 관장이 날아오르는 잉어 아래 백자 호랑이를 바라보고 있다.     ©

▲ 이원균 관장이 기자에게 전각을 찍어주고 만족한 얼굴로 손을 휴지로 닦고 있다.     ©

 

아래는 위 기사를 ‘Google 번역’으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이다. ‘Google 번역’은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영문 번역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전제로 한다.

<*The following is [the full text] of the English article translated by ‘Google Translate’ and amended. ‘Google Translate’ is working hard to improve understanding. It is assumed that there may be errors in the English translation.>

 

[Our Anyang people!]③ Wonkyun Lee, Director of

the Visiting Museum

 

“I don’t want to separate anything, I just want to share my heart”

Poetry, Calligraphy, Painting, Seal Engraving... The core of the

oriental spirit is contained in the seal engraving

 

Weekly Hyundai Newspaper/Gyeonggi Break News started a character exploration series starting from the 14th anniversary of its foundation, “Our Anyang! This person!’” The third person is Wonkyun Lee, director of the Visiting Museum. Director Lee established 'Won Museum', the first private museum in Anyang City to collect and display the relics he has collected throughout his life, but it is currently closed. It literally runs a 'visiting museum'. He also runs the ‘Gallery Café Small Museum’ in Anyang Art Park.

 

On July 19th, I met Director Wonkyun Lee in the exhibition room of the Visiting Museum in Anyang Art Park.

 

Won Museum is the first private museum established in Anyang. It was during the Lee Myung-bak administration when Director Won-gyun Lee opened the Won Museum. Director Lee set the admission fee at 1,000 won, advocating for “the happiness of 1,000 won.” However, at that time, Minister of Culture, Inchon Yoo, opened national and public museums across the country free of charge. Because of that, he also lost 1,000 won admission fee, and turned the Won Museum into a small museum and a gallery cafe. My heart to open a museum was like a chimney, but in the end it became difficult. Someone invited me from Jeju Island and I went down to Jeju Island. In Jeju Island, I did the unmanned museum and then came back to Anyang. Many artifacts are missing. I need to find a place to exhibit, but I can't find a suitable place. All the big relics are in the house.

 

It was a waste to leave the relics alone, so I established a “visiting museum” with like-minded friends.

 

“I was in my early 30s, so it was 27 or 8 years ago. An elementary school in Yeongwol with a total of 40 students, an elementary school near closure in Yeongwol-gun, Suju-myeon, Yeongwol-gun, is an elementary school in Yeongwol with a total of 40 students, with three of them as the center, as a friend who rents a bus and a dentist buys school supplies, and a friend who was an executive at a large corporation donated money. It started with all the relics of dinosaur teeth, dinosaur eggs, and the like on the bus to Unhak Elementary School.”

 

The school is now closed. That's how it started as a "visiting museum". It seems that they are doing it to find their own happiness.

 

㈔ The museum you visit will also exhibit for one person if deemed necessary.

 

In the days of President Syngman Rhee, there is a person called Dr. Jinsu Lee who came to the United States in his early 20s and brought a loan to Korea on the order of the president. Seeing that he was the one who worked hard for the country, he went to find him and did a “visiting museum” just for him.

 

There is a person who runs the Mugunghwa Gosiwon in Beopup-eup, Paju-si. It is a gosiwon like Mureungdowon in the mountains. When you come in, you can't do anything except study. Jeon-soo is the president of the court, and he produced about 40 people who passed the examination. I thought that these people were the patriots of our country and were working in secret. He took the first engraving just for him to be happy.

 

“The best relic I have is the carving. One of the most famous artists in China for engraving is Jeong Kyeong, who has about 60 of his works, including three of his works, including Seok-Yeo Dung, Chang-Seok Oh, and Mok-Bo Hwang, Mok-Bo Cho, and Hwang-Yeop. It is one of the things I am proud of.”

 

For Director Won-gyun Lee, what he wants the world to know is the engraving. That's because it's the only one. There are 5 works of Jeong Kyung in the world, two are in China, and the director Lee owns three.

 

“The three works of Jeong Kyung are the only ones in the world that I own. It usually refers to poetry, book, and painting, but here we go one step further. Poetry, calligraphy, and painting. That is the core of the East. The core of our psyche is contained in the fortifications.”

 

Director Won-Kyun Lee has about 1,600 artifacts, so he can exhibit throughout the year. Not long ago, he was invited to the Intercontinental Hotel in Gangnam and participated in the main exhibition. Members of the National Assembly also performed exhibitions and stamps at the event where eight people were present.

 

“Business people are stamped with a sign that says “Yeoui (如意) to do everything as they set their minds to go. For those who want to live a happy life, we will stamp the engraving of a happy life.”

 

Korea, China and Japan are the core of the East as the same calligraphy culture. Calligraphy is at the core of it, and the engraving is at the end of the poetic painting of writers. So, from the Ming and Qing eras, there is a genealogy of Zhonggak. Jeonggyeong was born in 1695 and lived until 1765. Almost 300 years ago. Jeonggyeong became a family member of Daobeop (刀法) and became the Gaesanjo (開山祖) of the Jeolpa (浙派) among the schools of Jeonggak.

 

Director Won-Kyun Lee was able to further his studies while collecting engravings. A collector cannot study without studying. He doesn't mean anything if he doesn't know what he's collected. Some people buy land and stock securities, and if he does that, he will make more money.

 

“No matter how hard and difficult it was, I never regretted it. People in the world chase money and adapt to reality, but I don't know securities or real estate. In a way, that's stupid. In real life they are stupid, but in some sense of the world they are not. Because I have learned so much more about living wisely in the world than I have learned with money. That's what I really want to say. It means that I grew up by studying to know the artifacts while collecting them.”

 

Many people come to see the hall in the collection of Director Won-gyun Lee. A lot of calligraphers come because poetry painting is connected. The important thing is that all the engravings have to end. So you can angle it. Just like in a painting, at the end of the seal, Aho and his name are stamped. However, there is something more important about this engraving. It's not about leaving your name behind. The ancestors left everything in their lives in the hall. The two letters he wants to leave in the world, he engraves them there. The two letters I want to leave behind in my life, I engrave them on the jade. The brush is curved, but the knife is straight.

 

“When your studies reach the highest level, ‘Leave the best two characters in the poem,’ and you will engrave the two best characters on the engraving. A man named Oh Chang-seok left the word Dae-ah (大雅). Jeong-gyeong means “blessings from heaven” (天祿), and “Gongjeoksu (恭則壽)” means to enjoy longevity through learning, and it means to learn to write politely and enjoy longevity. Seo Yeon-su (Seo Yeon-soo) engraved these three things.”

 

That's a canon work. How beautiful is the lotus flower engraved on the exterior of the main hall of the scene? One is in the lotus flower, and the other is in the sky. This depth is endless, with each other at the end, as a picture as a poem, as a poem, as a poem.

 

Director Won-gyun Lee has made the word seolseung (雪塍) his motto. It's a plow winner in the snow. A ‘snow-covered paddy field’, a state where there are no boundaries and no sharing. These are the inscriptions engraved on one of the halls in the collection of Director Lee.

 

“Seolseung, the snowy field. I don't even know who's talking. It contains the heart of a craftsman who wants the boundaries divided by ideas and interests to disappear. ‘Do not share anything, only share your heart.’ This is the society I dream of.”

 

There is also a full length of 70 yong (七十翁). The words 70 ong were engraved on the jade where the red sunset was reflected. If you look at it, it's an evening of a day. The season to set the sunset is autumn. Life is 70. This is the most wonderful time. It's called a tune-up. 70 ang, the body bends at 60, but the mind bends at 70. The brightest is 70. Director Won-gyun Lee sees it that way. The flower of the spirit is 70.

 

Some are engraved with the words 不進卽退 (不進卽退). Even staying is regressive. From the poem of Li Bai to the poem of Du Fu, up to 200 characters are engraved on each fingernail.

 

Director Won-kyun Lee graduated from the College of Engineering and entered the overseas travel division of Sejoong Co., Ltd., located in the Samsung main building, in 1987. During the six years of his three-year service, he traveled to more than 50 countries, opening his eyes to relics. The last course of his overseas trip was Taiwan. Although the climate is bad and humid and there is nothing to see, people from all over the world flocked to the National Museum of the National Palace of Taiwan.

 

“I saw people from all over the world come to see jade jade, engraved on rice, and I was like, ‘uh’. Realizing the importance of relics, I started collecting them. Now I have no money and no stuff. Thanks to his wife for living with the madman. He didn't prepare for his retirement, but wherever he goes, isn't he preparing for retirement by having things that no one else has?"

 

Director Won-gyun Lee gave a piece of advice for Anyang, the cultural city.

 

“Isn’t Anyang’s culture the most important to Anyang? But I don't think it's easy to make it 'beautiful'. I think that people who like culture and who love culture should constantly and explosively create ‘the quality of Anyang’. I am part of it.”

 

In Lee's view, there is not much room for culture to intervene because everything is still moving according to the logic of interest. True cultural people seem to be hiding. that's a pity

 

“I hope that Anyang can bring out such people.”

 

Director Lee constantly contemplates how he can contribute to the cultural development of Anyang.

 

“Can't I just do the best I can do where I stand? First of all, I want to let young people know the beauty of old things. Ceramics, sculptures, bamboo, earthenware, paintings, and relics are not divided, and if anything is art, there is a spirit that comes from it, so I want to convey the spirit of artists to the youth.”

 

Next, Director Wonkyun Lee expressed his wartime philosophy.

 

“The main topics of the exhibition at the Won Museum are the view (觀), the heart (心), the mind (思), and the sense (感). Seeing, feeling, holding your heart, and thinking are the elements that lead to the beauty of life.The eye sees, the heart sees, the mind sees, the sense senses, and the hand sees. It is said that a hundred sentences are unsatisfactory, but a hundred actions are unsuccessful. ‘It is better to awaken once than to practice a hundred times.’ It can be said that enlightenment that contains enlightenment is a spiritual treasure.”

 

Director Won-Kyun Lee is making the topic of his life to properly open a full-length exhibition in the future.

 

“It costs thousands of dollars. It is difficult to spend so much money on an exhibition right now, and for the time being, we plan to focus on visiting museums. If a company or someone sponsors it, I want to promote it and show it to the world. We also increase the value of the engraving, and then we would like each other. I'm the only one who can't conscience good. We want each other to be good.”

 

Director Won-gyun Lee asked the relic one day.

 

“‘Why, why did you come to me?’ It answered, 'You like me the most.' I am more finite than a relic. For a moment, I enjoy the luxury of enjoying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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