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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군(扶安君) 이석수(李碩壽: 1524년~1598년)는 조선 9대 왕인 성종과 명빈 김씨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무산군(茂山君: 1490~1525)의 아들이다. 처음에는 종친에 하사하는 창선대부 부안정(彰善大夫 扶安正)이라는 품계를 받았고 중종이 승하한 후 중종의 신위를 모시던 전각에 3년간 입직한 공로로 이후에는 명선대부 도정(明善大夫 都正)이라는 품계를 받았다.
임진왜란 때는 선조를 호위한 공로로 선무원종공신(宣武從勳)에 올랐다. 왜군이 선릉과 정릉을 훼손시키자 임금의 명을 받고 능을 보살피는 일을 맡기도 했을 정도로 임금에게 신의를 받았다. 사후에는 정의대부 부안군을 하사받았다.
전주 이씨 무산군파 종중(회장 이능우)은 서울 동작구 현충원내 부안군 묘역에서 매년 시제를 지낸다. 지난 11월 28일에도 시제를 지냈다.
후손들은 성종대왕의 후손이며 무산군에 이어 부안군의 14대 손이다. 제례에 참여한 평택 부안군파(무산군의 아들) 종회장 이정춘 씨는 평택의 집성촌에서 종사일을 30여년째 맡고 있다.
“부안군은 성종대왕의 손자니까 그래서 오늘 12대조 할아버지 제사를 지낸 것이지요. 저는 여기 평택에 있는 부안군 집성촌에서 종사일을 30년 간 맡고 있습니다."
부안군 후손들의 직업은 다양하다고 한다. 언론인, 농업, 금융, 유통업 등의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정춘 씨는 경기도 평택에서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저희가 사는 평택에는 부안군 씨족이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10대조 할아버지가 평택으로 낙향을 해서 그를 중심으로 혈통집단이 형성이 된 것이죠.”
이정춘 현 종회장은 16살에 학교를 졸업하고 동네에서 한학 서당에 다니며 학문을 익혔다. 그래서 한학에 조예가 깊다. 논어, 맹자 등 사서삼경을 다 읽었고 한문 고전번역에도 능해 어느 기관에서 한문 족보 등 서적을 번역해 달라고 의뢰가 올 정도의 전문가이기도 하다.
“저는 평택에서 농업에 종사하면서 그야말로 전통문화를 보존하면서 살아온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하하). 지역에서 지관 일도 26살때부터 했으니까 지금까지 40년 넘게 한 셈이죠.”
영화 ‘파묘’로 유명해진 지관(地官)은 지금 남아 있는 종사자들은 거의 없다. 이정춘 씨는 마지막 지관이라 할만하다. 그가 지관일을 직업적으로 한 것은 아니고 농사하면서 저기 누가 돌아가셔서 터 잡아달라고 하면 가서 양택, 음택 이런 것 봐주면서 잡아주고는 했다. 그는 옛날과 지금은 격세지감을 많이 느낀다고 한다.
“옛날에는 매장이 대부분이었으니까 일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지금은 매장이 5%도 안돼니까 일이 거의 없죠. 지금은 한 달에 3번 내지 4번 정도 봐줍니다. 옛날에는 한 달에 몇 십 건은 보통이었습니다.”
무료는 아니고 비용은 어느 정도 받는다. 다만 일정한 금액을 청구하는 방식은 아니고 상주측에서 사례금처럼 본인들이 알아서 주는 식이다. 예전에는 잘 봐주면 자녀들이 고맙다고 크게 사례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후손들이 덕을 봤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터를 봐주고 자녀가 사법고시에 합격하거나, 좋은 회사에 취직하거나 또는 드물기는 하지만 중앙정부의 장관에 중용됐다고 사례를 한 적도 있다.
“한국인은 조상이나 자연에 복을 비는 문화적 기질이 유독 강한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이것이 터를 중심으로 하는 지관 문화에 의존하는 경향이 많았다면 지금은 또 무당에 의존하는 경향이 많죠. 그래서 우리나라가 전세계적으로 무당이 상당히 많다고 하지 않습니까. 뭔가 조상이나 자연에 의존하면서 복을 비는 것은 오래도록 이어져 내려온 한국인 특유의 문화적 특성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한국이 전통적으로 제사를 많이 하는 민족이란 것도 이런 성향과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사를 통해 조상에게 복을 기원하는 것이죠. 아무튼 이것도 우리 민족의 전통을 지켜나가는 힘의 근원이 아닐까 싶습니다. 원인이야 어떠하든 제가 숨쉬는 날까지 전통 문화는 지켜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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