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라지는 유럽발 ‘탄소국경세’…국내 산업에 미칠 영향과 대책은
글쓴이 : 김정화 날짜 : 2021.08.05 20:39

국내 철강사인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올해 상반기 역대 최대 영업이익을 거뒀다.

 

코로나19 이후 건설과 가전, 조선 등 전방산업에서 수요가 급증한 결과다. 하지만 마냥 기뻐하지 못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이 지난달 도입 일정을 공개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탄소국경세) 때문이다. 여기에 미국 정부도 탄소국경세 도입을 예고하고 있어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정부는 우리 기업에 불합리한 규제를 도입하지 않도록 통상 규범에 기초해 대응해 나가는 한편, 제도 시행으로 영향을 받는 업종을 대상으로는 세제·금융 지원, 탄소중립 연구개발(R&D) 등 다각적인 지원 방안을 연내에 마련할 방침이다.

 

◆ EU, 탄소국경세 도입 본격화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지난달 14일 기후대응 법안 패키지인 ‘Fit for 55’를 발표하며 본격적인 탄소국경세 시행을 예고했다. 해당 패키지를 발표하며 ‘탄소국경조정메커니즘’(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이하 CBAM) 도입에 대한 결의문도 공개했다.

 

결의문에 따르면 역내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최소 55% 감축하기 위해 탄소국경세를 도입하고, 2035년부터 EU 내 신규 휘발유·디젤 차량 판매를 사실상 금지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또 교통, 제조업, 난방 부문에서 탄소 배출 비용을 높이고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항공·선박 연료에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 문승욱 산업부 장관이 지난 7월 6일 서울 포시즌스호텔에서 프란스 티머만스 EU 그린딜 담당 수석 부집행위원장과 면담을 갖고 있는 모습. (사진=산업통상자원부)  ©



◆ EU, 탄소국경세 도입 왜?

 

EU 집행위는 이날 세계 첫 탄소국경세 도입 계획을 제안했다. 탄소국경세는 탄소배출 규제가 약하고 자국보다 탄소 배출이 많은 국가의 수출 품목에 부과되는 관세로 EU와 미국이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EU가 이를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이유는 국가별로 탄소 관련 규제 수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EU는 폭염과 가뭄, 이상 기온 등이 탄소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판단하고 각종 환경 규제책을 마련해왔다. 이 때문에 역내 기업들은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별도 비용을 지출해야 했다.

 

반면 규제가 상대적으로 느슨한 다른 국가들은 동일한 탄소 배출 규칙을 준수하지 않아 EU에서 제품을 판매할 때 가격경쟁에서 우위를 점해왔다. 여기에 탄소 배출 규제가 늘어나면서 생산 단가가 저렴한 기업으로 생산지를 옮기는 등의 ‘탄소 누출’ 사례도 빈번하게 발견됐다.

 

EU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럽 역내에서 생산되는 제품과 동일한 방식으로 역외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한 기업에도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취지로 탄소국경세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 탄소 국경세는 어떻게 매기나?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EU는 2023년 1월 1일부터 철강·시멘트·비료·알루미늄·전기 등 5개 분야에 탄소국경세를 적용할 계획이다. 탄소국경세는 EU로 수입되는 제품의 탄소 함유량을 조사해 EU의 탄소배출권거래제(ETS)와 연계된 탄소 가격을 별도로 부과한다. 2023년부터 3년동안은 수입품의 탄소배출량 보고만 받고, 2026년부터는 실제로 부과하는 방식이다.

 

탄소국경세 징수 대상은 EU 내 수입업자다. 탄소국경세 적용 품목 수입업자는 사전에 연간 수입량에 해당하는 양의 ‘탄소국경조정제도 인증서(certificate)’를 구매해야 한다. 인증서 1개는 탄소 1톤에 해당하며, 품목별 탄소량은 생산 과정에 발생하는 직접 배출량으로 계산한다.

 

이를테면, 한국산 철강 1톤을 생산하면서 발생하는 탄소량이 2톤일 경우, 이를 수입하는 EU 내 수입업자는 철강 1톤당 인증서 2개가 필요하다. 수입업자가 1년 동안 철강 100톤을 수입한다면 인증서 200개를 구매해야 한다는 뜻이다.

 

대외경제연구원은 “인증서 가격은 EU가 마음대로 정하는 게 아니라 유럽의 탄소배출권과 연동돼 유럽 탄소배출권 가격이 높아지면 유럽으로 수출하는 기업들의 탄소 배출 비용도 똑같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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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소국경세 도입이 우리 산업에 미칠 영향은?

 

탄소 국경세는 무역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부분인 만큼 유럽이나 미국 수출 의존율이 높은 우리나라에 적지 않은 타격이 예상된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29일 발표한 보고서 ‘주요국 기후변화 대응 정책이 우리 수출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EU와 미국이 탄소국경세를 부과하면 한국의 수출은 연간 1.1%(약 71억 달러, 한화 8조1224억)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EU와 미국에 대한 수출이 각각 0.5%(약 32억 달러, 한화 3조6608억원), 0.6%(약 39억 달러, 한화 4조4616억원) 줄어든다. 이번 분석은 EU와 미국 모두 수입 제품의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에 대해 톤당 50달러의 탄소국경세를 부과하는 상황을 전제로 했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러시아, 중국 등 다른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최근 글로벌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가 EU의 CBAM 도입 후 국가별 탄소세 추징 가능 금액(2019년 기준)에 대한 전망치를 분석한 결과, 러시아는 약 150억 달러(한화 17조1600억원), 중국은 약 100억 달러(11조4400억원), 터키는 약 90억 달러(10조2960억원)의 탄소세를 EU에 납부해야 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EU는 탄소국경세 제도를 발표하면서 2035년 EU에서 내연기관 차량 판매도 금지했다. 가솔린이나 디젤 등 내연기관 차량이 내뿜는 탄소를 100% 감축하겠다는 것이다. 이에따라 국내 자동차업계는 유럽 미국 중국 등 주요 시장에서 전기차 판매를 전면화하겠다는 계획을 앞당겨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 정부, 탄소배출권 거래제 강조…“탄소국경세 적용 제외국 인정해야”

 

정부도 탄소국경세 도입에 따른 대응 마련에 고심 중이다. 정부는 그동안 EU 및 주요 관계국들과 양자 협의 등을 진행하며 탄소국경조정제도를 세계무역기구(WTO) 규범에 합치하도록 설계·운영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또 이 제도가 불필요한 무역장벽으로 작용하게 해서는 안 되며, 우리나라가 시행 중인 배출권거래제와 같은 각국의 탄소중립 정책을 반영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문승욱 산업부 장관은 지난달 6일 프란스 티머만스 EU 그린딜 담당 수석부집행위원장을 만나 우리나라가 탄소 배출권 정책을 시행하는 만큼 탄소국경세 적용 제외국으로 인정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우리 기업들이 탄소배출량에 따른 환경 부담금을 내고 있는데, 유럽의 탄소국경세까지 더해지는 사실상의 이중 과세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도 지난 3일 ‘제20차 통상추진위원회’를 주재한 자리에서 “각국의 탄소국경조정 도입 움직임에 대해서는 세계무역기구(WTO) 등 국제통상 규범에 부합해야 하고, 불필요한 무역장벽으로 작용하지 않아야 한다”며 “우리 탄소중립 노력과 제도를 반영해야 함을 요구하고, 관련국과의 협의 및 다자적 대응도 병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를위해 먼저 정부는 관계부처 공동으로 탄소국경조정제도와 연관된 국내 제도를 점검하고, 민관 공동협의회를 정기적으로 열기로 했다. 아울러 제도 시행으로 영향을 받는 업종을 대상으로는 세제·금융 지원, 탄소중립 연구개발(R&D) 등 다각적인 지원방안을 연내에 마련할 방침이다.

 

가장 큰 영향이 예상되는 철강 분야에 대해서는 정책연구용역을 거쳐 상세한 영향 분석과 대응 방안을 수립하는 한편,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그린철강위원회 등 산·관·학 협의 채널을 활용해 소통을 강화한다.

 

박진규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은 “탄소국경조정제도가 도입되더라도 민관이 합심해 철저히 대응해 나가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을 것”이라며 “세계적 추세인 탄소중립이 우리 산업에 긍정적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업계도 선제적으로 준비하고 대응해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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