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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재선에 성공한 민병덕 안양동안갑 국회의원
“우선 경기도당 위원장 도전하고, 준비되면 당 대표에도 도전하겠다”
기사입력  2024/05/14 [10:08] 최종편집    강성봉 기자

‘서울대 안양 직통선, 노후 계획도시 특별법 조율, 상병 수당 안착’ 주요 과제로 생각

“환경‧남북‧양극화 심화 문제 해결하고 공동체 복원, 문화 융성한 나라가 좋은 나라”

 

▲ 민병덕 안양동안갑 국회의원     ©

 

지난 4월 10일 치러진 22대 총선 안양동안갑 선거구에서 민병덕 의원은 5만6,891표를 획득, 4만2,335표를 획득한 국민의힘 임재훈 후보를 득표율 57.33% 대 42.66%로 여유 있게 따돌리고 재선에 성공했다. 안양 군포 의왕과천 지역 선거구에서 가장 큰 격차를 보였다. 민병덕 의원이 지난 21대 총선에서 보여준 돋보이는 의정활동의 결과라고 볼 수 있겠다. 민병덕 의원을 지난 5월 11일 지역 사무실에서 만나 당선 소감과 22대 국회 의정활동 계획 등에 대해 들어봤다. 다음은 민병덕 의원과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민 의원의 저서의 내용도 필요할 경우 보충해서 일문일답 형식으로 재구성한 내용.

 

대통령 취임 2주년 기자회견이 있었다. 어떻게 느끼셨나?

 

“지나고 나서 유튜브로 전체를 다 봤다. 정말 왜 하셨는지 모르겠더라. 굉장히 검사스러운 논법, ‘절대 이거 인정하면 안 돼’ 인정은 절대 안 하면서도 ‘내가 조금 미진한 건 있어. 결과적으로 소통이 잘못돼서 내 의도가 잘 전달되지 않아서 이런 오해가 생긴 것 같아. 그렇지만 내 의도는 그런 거 아니었어’ 이렇게 절대 사과하지 않으면서 계속 버티는 그런 논법이었다. 저는 그분에게 인생 전체에 걸쳐서 그런 게 배어 있는 거 아닌가 생각했다.

 

다른 분들은 ‘나’를 객관화시켜서 보는 노력을 계속 하는데 잘 안 된다. 그걸 성찰이라고 하는데 저도 잘 안된다. 나를 객관화시켜서 나의 밖에서 나를 계속 바라보는 거, 나 밖에서 나와 다른 사람의 관계를 바라보는 것, 나와 타인 사이의 관계를 바라보는 것, 이게 성찰이다.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그런 성찰적 태도가 없어 보였다. 한마디 더 말씀드리면 ‘안 바뀌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본인은 어설프게 막 이런저런 얘기하셨지만 거기에 본인이 어떻게 하겠다는 것들은 다 녹아 있더라. 제가 정책위 수석부의장이기 때문에 그분의 말씀과 팩트와 이런 것들을 다 정리를 했다.”

 

재선 국회의원으로서 당선 소감은?

 

“초선 때는 매우 기뻤는데 재선은 기쁨의 감정보다는 부담감이 더 크게 와 닿는다. 재선에 관한 감정을 누릴 새도 없이 당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을 맡아 정신없이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21대 국회에서 최대의 업적으로 ‘코로나 손실 보상법’ 제정을 꼽고 계시다. 의원님의 저서인 ‘코로나특별법 분투기’에 보면 정의당 심상정 의원과 국민의힘 최승재 의원이 처음부터 끝까지 법제정을 위해 함께 노력한 대목이 인상 깊다. 어떻게 다른 당 의원들과 함께 할 수 있었나?

 

“그때가 코로나가 창궐해 있는 상태에서 ‘이거 어떻게 하나’라고 다들 고민하고 있을 때다. 그때는 코로나에 대한 공포가 있어서 ‘이걸 막아야 된다’ 해서 집합금지를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상태였다. 외국은 그게 잘 안 돼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었다.

 

그건 잘하고 있는데 ‘그러면 우리 소상공인, 자영업자 이런 분들은 어떻게 하지? 이분들 손해가 많겠네. 그런데 이걸 보상한다면 돈이 너무 많이 들지 않을까?’ 이렇게 다들 멍하고 있는 상태, 어떻게 할 줄 몰라서 멍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제가 이 자리에서 간담회를 하고 ‘이건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구나’ 생각했다. 이분들이 공동체를 위해 특별한 희생을 했다. 헌법 23조 3항에는 ‘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하되,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여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그러면 ‘이분들한테 특별한 보상이라는 형태의 손실 보상이 필요한 거잖아’ 생각했다. 이분들이 공동체를 위해서 집합을 금지해서 코로나 확산을 막는데 그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를 온전히 혼자 감수하라고 하면 ‘이건 말도 안 되잖아’라고 생각해서 ‘코로나손실보상법을 만들게 됐다.

 

그런데 저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라 소상공인 몫으로 국민의힘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된 최승재 의원과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심상정 의원은 그때까지는 제가 한 번도 사적으로 통화해 본 바가 없었다. 제가 그 법안을 만들어서 발의했더니 전화가 왔더라. 휴대폰으로 ‘의원님 정말 법안 잘 만드셨다. 저도 준비 중이었는데 제가 의원님 법안보다 더 잘 만들 것 같지 않다 그래서 그걸 지지한다’ 이렇게 말씀하셨다.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 어떻게 할까 고민을 했다. 하루 만에 국회의원 공동발의를 63명을 받았다. 그 다음 날 아침에 기자회견을 하는데 한 번도 그렇게 많은 카메라 세례를 받아본 적이 없다. 기자회견장에서 뜨거운 분위기 속에서 발표를 하고, 백브리핑 장으로 가는데 거기도 똑같이 많은 기자들과 카메라가 대기하고 있더라. 통상적으로 백브리핑을 하러 따라 오는 기자는 한두 명 정도다. 기자회견을 독자적으로 해본 경험도 없고, 백브리핑도 내가 해야 되는지도 잘 모르는 상황에서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백브리핑으로 질의 응답을 한 30분 정도 했던 것 같다.

 

이튿날 민주당 최고위원회가 열렸다. 회의가 끝나고 기자들에게 백브리핑을 하러 나온 허영 대변인이 ‘민병덕 의원이 만든 특별법을 당론으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내가 만든 법이 당론이 되다니’ 꿈만 같았다. 민병덕 파란을 일으킨 것이다.

 

그게 아마 금요일이었을 거다. 그런데 주말에 이제 소위 당정청 회의를 거치면서 기재부의 거센 반대에 부딪치게 된다. 기재부가 ‘이거 안 된다’고 한 거다. 제가 예상하는 금액이 100조였다. 그래서 제 별명이 민경영이 됐다.

 

주말이 지나면서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 ‘인터뷰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 하고 당 지도부에서도 그 다음 월요일에 ‘고생했는데 이제 그만해’ 이렇게 나왔다. 정치 생명을 걸고 ‘한번 받아버릴까’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초선의원에게는 ‘튀면 안돼’라는 게 불문율로 존재하는 시기였다.

 

그래서 ‘오케이 알겠다’라고 하면서 외국 사례를 준비했다. 며칠에 한 번씩 외국하고 직접 줌으로 회의를 하면서 매번 외국 사례를 연구하는 토론회를 했다. 그 자료들을 계속 지도부와 의원들에게 보냈다. 그게 하나하나 쌓이면 쌓일수록 이제 당에서도 ‘안 하면 안 되겠구나’라고 하게 된 거다.

 

그 와중에 최승재 의원하고 심상정 의원이 우리가 이것을 공동으로 해보자 해서 시위를 하게 됐다. 최승재 의원은 천막 농성도 하고 단식도 했다. 그때 요구 사항이 ‘민병덕 법안을 통과시킵시다’였다.”

 

▲ 2021년 5월 25일 앞줄 오른쪽 다섯 번째부터 더불어민주당 민병덕 의원, 정의당 심상정 의원, 국민의힘 최승재 의원 등 여야 3당이 ‘코로나손실보상법’의 신속 처리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유튜브 캡쳐     ©

 

이제 재선 의원이 되셨는데 원내대표 비서실장, 조직 사무부총장,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 등 당 요직을 두루 섭렵하고 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건가?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핵심이라고 본다. 일머리도 중요하고 다 중요한데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재미있고 보람을 느껴야 되잖나. 그게 핵심이다.

 

제가 조직부총장 할 때는 전국 시도당을 한 세 번 정도 돌았다. 부산시당에 갔더니 한 당직자가 자기가 ‘10년 부산시당에 있었는데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다’더라.

 

그러니까 조직 구성원 어떤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그것에 대해서 칭찬하는 그런 일을 저는 지속적으로 한다. 그러면 재미있어 한다.

 

당 조직 부총장 산하에 조직국이 있다. 조직국 직원 한 명 한 명 면담하고 그 사람이 뭘 잘하는지, 뭘 하고 싶어 하는지, 그런 걸 알아보고 그걸 나를 통해서 할 수 있게 구성을 한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어 하고 그에 대한 평가가 좋고 그 평가들이 다 모아지는 거다.

 

두 번째는 일머리여야 된다.

 

일머리는 그 일을 어떻게 분배해서 어떻게 할 건지에 대한 계획이고 어느 정도 성과를 내는 것이지 않을까.

 

예를 들면 예결소위 할 때 제가 경기도 남부를 맡았다. 경기도 남부를 맡는다는 얘기는 경기도 남부에 있는 지역위원회의 모든 것을 듣고 그것을 관철시키는 역할을 해야 된다는 의미다. 그럴 때 허투루 어디 대충 연락하고 ‘여기 없네’ 이렇게 하지 않고 ‘몇 개를 꼭 언제까지 보내 달라’고 하고, 그 과정을 다 설명해 드렸다. ‘허투루 일하지 않는다. 허투루 말하지 않는다. 허투루 약속하지 않는다’는 거다.

 

그 다음에 ‘사람을 성의껏 대한다’는 거다.

 

일머리를 안다는 것이 주요 요직을 맡는 데 있어서 ‘민병덕 일 시키면 잘하지. 민병덕 잘하지’ 이런 평가들을 주로 받게 하는 요소인 것 같다.”

 

지난번 선거에서 안양의 10대 공약을 내세우셨다. 물론 다 이행하셔야 되겠지만 그중에서 우선순위를 정한다면?

 

“안양 시민들이 가장 뜨거운 반응을 보인 공약이 뭐였냐면 ‘서울대 안양 직통선’이다.

 

이번에도 그랬지만 그 공약이 처음 나왔을 때 굉장히 센세이션했다. 그게 이제 서부선 남부 연장이라는 이름으로 한 단계를 넘어가고 있다. 아직도 갈 길은 멀지만 서부선 남부 연장이라는 이름을 경기도에서 받아가지고 계획에 들어갔다.

 

두 번째는 이제 곧 발의되고 시행되는 노후 계획도시 특별법을 잘 조율하는 문제다. 노후 계획도시 특별법이 시행되면 평촌을 광풍으로 휩쓸 거다. 그것이 제 임기 동안에 있을 거고, 사람들의 욕망이 완전히 분출할 것이다. 여기가 어떻게 선도지구가 한꺼번에 다 되겠는가. 순서 순서로 갈 텐데 그것을 매겨가는 과정에서 조율하는 것, 저는 이것이 아주 큰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너무 어려운 일이다. 저는 이것이 잘못되면 큰 문제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지금 역점적으로 추진할 22대 국회 의정활동 계획을 세워놓은 게 있는가?

 

“기본적으로는 지역 공약과 관련해서 아까 말씀드린 서울대 안양 직통선으로 서부선 남부 연장, 그다음에 인천 지하철 2호선 연장으로 비산사거리역 설치, 그 다음에 이제 이 평촌 신도시를 재정비하는 문제, 이것이 굉장히 큰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다.

 

지역과 관련해서 한 말씀 더 하면, 반드시 지역과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우리 지역에서 시범 사업으로 하고 있는 상병수당이 있다. 그것이 안착하는 과정에서 또 어떤 제도로 안착할 것인지, 예를 들면 소득 순위와 소득과 관계없이 다 주는 방안, 하위 50%만 주는 방안, 또 양방 한방 어느 것만 하는 방안, 이런 다양한 모델들이 지금 시범사업으로 실시되고 있다.

 

상병수당이 전국적으로 안착되는 게 이제 내후년 정도, 2년 뒤 정도가 될 거다. 그것을 제가 시범 사업으로 안양에 가져온 거 아닌가. 그것이 잘 안착되는 것은 국민들에게는 매우 중요하다.

 

일하다가 아프면 산재가 아닌 경우에 있어서는 유급휴가가 아니기 때문에 월급이 안 나온다. 그러면 그것이 병을 키운다. 그런데 상병수당으로 최저임금의 60%를 국가에서 준다 그러면 그거 가지고 최소한 생활을 하면서 병 고치고 그리고 다시 복귀할 수 있다. 이것은 매우 큰 민생의 하나다. 그게 저의 1호 법안이다. 그것을 안착시키는 것이 매우 큰 과제다.

 

국가 전체와 관련해서 저는 우리의 근본 문제들에 대해서 그냥 넘어가면 안 된다 생각한다. 국민연금도 이번에 꼭 마무리 지으려고 했는데 잘 안 돼서 좀 아쉽다. 지금 공론화위원회까지 열어가지고 한 건데 그것을 대통령이 걷어치웠다. ‘다음 국회에서 더 많은 전문가들이 논의하게 하겠다.’ 이거는 공론화위원회에서 자기가 원하는 결론이 안 나오니까 그냥 집어치워 버린 거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기후위기의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근본적으로는 30년 뒤에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가 돼야 될 것이냐’, ‘우리 아이들이 제 나이가 되었을 때 어떤 세상을 물려줄 것인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제가 아이들로부터 ‘우리 아버지가 정치했어. 그런데 아버지가 정치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거냐 아니면 아버지가 정치 몇 선 했는데 뭐야 도대체 어떤 세상을 만들어 놓은 거야? 이 문제도 해결 못하고’ 이런 평가를 들으면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아이들이 아버지의 정치에 대해서 자랑스러워 할 것인지 아니면 부끄러워할 것인지. 당연히 자랑스러워해야 되지 않겠는가.

 

지금 조그만 현안들만 대응하면서 바쁘게 지나가는데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나도 억울하긴 하겠지만 아이들한테 좋은 평가를 못 받을 거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근본적인 문제들, 연금의 문제라든지 기후의 문제라든지 또 양극화의 문제라든지 또 남북 간 통일의 문제라든지 이런 문제에 대해서 허투루 넘어가지 않겠다고 생각한다.

 

초선 때는 제가 ‘어젠다 세팅’하는 능력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지금은 재선이다. 재선에서의 중요한 역할들을 할 수 있다.

 

만약에 제가 경기도당위원장을 한다면 도당은 온전히 제가 생각한 대로 인사권 예산권 집행권을 가지고 꾸려볼 수 있는 거다.”

 

▲ 민병덕 의원(앞 왼쪽)이 지역 주민 행사에 참석해 파안대소 하고 있다.     ©

 

책에서 ‘국회의원은 꿈도 목표도 아니다.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수단이다’ 이런 말씀을 하셨다. 민 의원님이 생각하는 좋은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아까 조금 말씀드린 것 같은데 저는 정치를 다음 선거를 보면서 하는 것이 아니라 30년 뒤의 우리나라의 모습을 보면서 지금의 정치를 한다.

 

그러면 왜 30년 뒤냐? 간단하게 우리 아이들이 내 나이가 됐을 때 어떤 세상을 물려줘야 될 것이냐? 즉 달리 얘기하면 우리 할아버지는 11남매 두고, 우리 아버지 형제들이 본인보다 더 잘 살게 하려고 11남매 건사하면서 고생하면서 살아오셨다. 우리 아버지도 본인보다는 저나 당신 자식들이 더 잘 살게 하려고 엄청나게 고생하시다가 일찍 돌아가셨다. 그분들은 그렇게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오셨다. 저도 똑같은 생각 가지고 있다.

 

그런데 저는 우리 아이들은 지금보다 더 좋은 세상이 아닌 세상에 살게 될 개연성이 더 많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그것을 바꿔내 우리 아이들에게 더 좋은 세상을 물려주는 것, 이것이 저의 정치의 목표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 그 세상은 어떤 세상이냐? 우리 아이들이 안전히 살 수 없는 환경을 만들면 안 되지 않는가. 그래서 환경의 문제가 중요한 이슈가 되는 거다. 그 다음에 환경은 괜찮은데 전쟁이 일어나고 미사일이 날아다니고 계속 전쟁하는 그런 불안한 세상이 되면 안 되잖나.

 

그러니까 통일이 되고, 통일의 후유증을 어느 정도 극복한 나라, 그리고 김구 선생이 꿈꿨던 문화적으로 융성한 그런 나라를 상정하게 되는 거다.

 

환경의 문제, 남북 간의 문제, 그다음에 공동체 양극화 심화를 막는 문제, 공동체를 복원하는 문제, 그다음에 마지막으로 문화적으로 융성한 그런 나라를 꿈꾸는 거다.

 

그걸 하기 위해 동의하는 사람들과 정치를 같이 하고, 동의하는 후배를 키워서 ‘나의 몫은 5년이야. 니가 그다음에 5년 10년을 해’ 그리고 또 그거에 동의한 사람들이 이어 나가면서 목표가 달성된다고 보는 거다.”

 

민 의원님이 정치를 하시면서 가지는 정치인으로서의 꿈은 무엇인가?

 

“저는 제가 ‘쓰임이 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쓸모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당선 인사도 ‘제가 이웃과 세상에 잘 쓰이겠습니다’라고 했다.

 

이웃과 세상에 잘 쓰이는 사람, 공동체에 필요한 사람, 이것이 첫째고, 둘째는 ‘대한민국이 나아갈 바’ 조금 더 크게 말한다면 ‘세상이 나아갈 바가 이런 부분인 것 같다’라고 제시하고 그것에 조금의 기여를 하는 것 이것이 제 목표다.”

 

세상이 나아갈 바를 앞에서 끌고 갈 생각은 없으신가?

 

“그거는 역할에 따라서 다 다를 수 있을 거다. 정치를 저만 하는 게 아니라 저를 돕고 있는 사람들도 다 정치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함께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역할들을 같이 하고 있는데 제가 지금은 플레이어인 거다.

 

플레이어로서 초선하고 재선하고 그리고 또 어떤 당직을 맡는다 할 때 그것의 의미는 뭐냐 하면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영향력을 확대해 나간다는 거다.

 

그래서 무슨 자리에 가고 싶다거나 지금 무슨 자리라고 특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떤 권한이 좀 더 큰 자리, 집행 권한이 좀 더 큰 자리를 가고 싶은 것은 제가 꿈꾸는 것들을 조금 더 잘할 수 있는 힘을 가지는, 영향력을 가지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한 거다.”

 

그런 자리를 스스로 쟁취할 생각은 없는가?

 

“우선 경기도당 위원장에 도전할 생각이다. 지금 정책 수석이 너무나 재밌고, 당직을 여러 번 했지만 도당위원장은 또 다른 성격이다. 이거는 온전하게 제가 생각하는 것들을 어느 범위 내에서는 해볼 수 있는 거다. 조금 더 종합적으로 경기도의 당을 운영을 해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해보고 싶다.”

 

그러면 당연히 당 대표도 해보고 싶을 텐데…

 

“물론이다. 지금은 당 대표가 되기 위한 저의 주관적 객관적 능력이 아직 부족하기 때문에 안 하는 것이지만 제가 ‘이 정도 되면 준비가 됐다. 열심히 하면 해볼 수 있겠다. 제가 당을 어느 정도 잘 이끌어볼 수 있겠다’ 이런 자신감이 붙을 때는 저는 도전할 거라고 본다.”

 

▲ 민병덕 의원(왼쪽)이 독도를 방문했다.     ©

 

민본(民本)을 주창하신다고 할까 아주 중요한 화두로 가지고 계시다는 느낌이다. 정치적 좌우명 같은 게 있나?

 

“청책(聽策)이다. 들으면 그 사람이 스스로 정책을 만들어 낸다.

 

지금 어떤 정책을 전문위원들이나 민주연구원에서 머릿속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 가서 시민들의 말씀을 들으면 거기서 정책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그리고 그 정책의 효과는 훨씬 크다. 왜냐하면 그 정책을 어떤 분이 말씀하셔서 만든 거다. 그분 거다. 그러면 얼마나 그분이 뿌듯하겠냐. 예를 들면 제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코로나손실보상법도 안양의 상인들한테 저는 ‘당신들이 만들어준 거다’ 하고 있다.

 

카카오톡 선물하기라는 게 있다. 2만 원짜리 선물하면 모바일 상품권으로 케이크를 산다. 그러면 파리바게트나 그런 데서는 1만8,000원을 받는다. 10%를 수수료로 떼고 1만8,000 원을 업주는 받는다. 그것도 45일 뒤에 정산이 된다. 저는 카카오톡 선물하기를 받아도 쓰지도 않으니까 이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

 

어떤 분이 여기 오셔가지고 그 얘기를 하시더라. ‘이거 너무 부당한 것 아닌가’ 해서 ‘형 그거 좀 더 자세히 얘기해 봐’ 해서 얘기를 들었다. 그걸 파고, 파고, 파고 해서 지금 그걸 바꿔내고 있다. 그 시장이 현재 한 10조 정도이고 계속 커지고 있다.

 

민본이라는 의미는 ‘국민들 속에서 정책도 나오고 비전도 나오고 그런 거다’라는 측면이고, 그것들을 잘 조율하는 것이 정치다. 조율의 핵심 단어를 말하면 저는 화합할 화(和)자라고 생각한다. 벼화자에다가 입구자다. 먹을 것을 나눠야지 화합이 되는 거다.

 

먹을 것을 나누는데 그 사람의 필요와 그 사람의 기여와 이런 거에 따라서 설득력 있게 나눠야지 화합이 될 거 아닌가. 정치학에서 ‘정치란 희소한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라고 하는데 딱 맞는 말이다. 그것을 제가 가장 잘해보려고 한다.”

 

안양시민, 주간현대신문 독자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 있다면?

 

“저를 믿고 일할 기회를 주셔서 ‘정말 고맙다’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국회의원으로서의 일이라는 것은 세 가지 측면이 있다. 국회의원은 ‘지역구에서 뽑힌 전 국민의 대표’이기 때문에 먼저 지역구에서 필요로 한 일들을 잘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전 국민의 대표이기 때문에 전체 국민의 민생과 관련된 부분들을 잘 해내야 된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근본과 관련된 그런 문제들이다.

 

세 번째, 정권을 뺏겨놓고 보니까 실행력이 엄청나게 줄어들더라. 정권을 되찾기 위해서는 권력 의지를 가져야 된다. 정책을 실행하기 위한 권한을 갖기 위한 권력 투쟁, 이 일도 저는 열심히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 세 가지 부분에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씀을 드린다.”

 

 

 아래는 위 기사를 ‘Google 번역’으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이다. ‘Google 번역’은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영문 번역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전제로 한다. <*The following is [the full text] of the English article translated by ‘Google Translate’ and amended. ‘Google Translate’ is working hard to improve understanding. It is assumed that there may be errors in the English translation.>

 

 

[Interview] Min Byeong-deok, National Assemblyman from Anyang District, who was re-elected

 

“First, I will challenge for the chairman of the Gyeonggi Provincial Party, and when I am ready, I will also challenge for the position of party leader.”

 

‘Seoul National University Anyang direct line, coordination of special laws for old planned cities, establishment of sickness allowance’ are considered major tasks.

 

“A good country is one that solves problems of the environment, North and South Korea, and deepening polarization, restores communities, and prospers culture.”

 

In the Anyang-dong Gap constituency in the 22nd general election held on April 10, Rep. Min Byeong-deok received 56,891 votes, easily beating People Power Party candidate Lim Jae-hoon, who received 42,335 votes, with a vote rate of 57.33% to 42.66%, and was re-elected. . The largest gap was seen in the Anyang, Gunpo, Uiwang, and Gwacheon constituencies. It can be seen as the result of Rep. Min Byeong-deok's outstanding legislative activities in the 21st general election. I met Rep. Min Byeong-deok at his local office on May 11 and heard about his thoughts on being elected and his plans for legislative activities in the 22nd National Assembly. The following is an interview with Rep. Min Byeong-deok, reorganized in a question-and-answer format with the contents of Min's book supplemented when necessary.

 

There was a press conference on the second anniversary of the president's inauguration. How did you feel?

 

“Afterwards, I watched the whole thing on YouTube. I really don't know why you did it. A very prosecutorial argument, ‘You should never admit this’, but never admitting, ‘There are some things I am a little lacking in. As a result, I think this misunderstanding occurred because communication was poor and my intentions were not conveyed well. But that wasn’t my intention.’ This was the kind of argument that kept going without ever apologizing. I thought it was something that was ingrained in him throughout his life.

 

Other people keep trying to view ‘me’ objectively, but it doesn’t work out well. It's called introspection, but I'm not good at it either. Objectifying myself and continuously looking at myself from outside myself, looking at the relationship between me and other people outside myself, looking at the relationship between me and others - this is introspection.

 

(At the presidential press conference) There seemed to be no such reflective attitude. To say one more thing, I had the feeling that ‘it won’t change.’ He talked about various things in a clumsy manner, but everything he said he wanted to do was included in it. “Because I am the senior vice-chairman of the policy committee, I organized all his words, facts, and such.”

 

How do you feel about being re-elected as a member of the National Assembly?

 

“I was very happy when I was first elected, but re-election felt more like a burden than a feeling of joy. “I am spending my days in a hectic manner as senior vice-chairman of the party’s policy committee, without even having time to enjoy the emotions surrounding re-election.”

 

The greatest achievement of the 21st National Assembly is the enactment of the ‘Corona Loss Compensation Act.’ In the lawmaker's book, ‘The Struggle for the Special Corona Act,’ the passage in which Justice Party lawmaker Shim Sang-jeong and People Power Party lawmaker Choi Seung-jae worked together to enact the law from beginning to end is impressive. How were you able to work with other party members?

 

“That was the time when the coronavirus was spreading and everyone was wondering, ‘What should we do about this?’ At that time, there was a fear of the coronavirus, so we thought it was natural to ban gatherings, saying, ‘This must be prevented.’ In foreign countries, that didn't work out so many people were dying.

 

We are doing well, but what should we do about our small business owners and self-employed people? These people must be suffering a lot. But wouldn’t it cost too much money to compensate for this?’ Everyone was in a dazed state like this, not knowing what to do. So, I had a meeting here and thought, ‘I can’t just ignore this.’ These people made special sacrifices for their community. Article 23, Paragraph 3 of the Constitution stipulates that ‘the expropriation, use or restriction of property rights for public necessity and compensation therefor shall be made by law, and fair compensation must be paid.’

 

Then I thought, ‘These people need compensation for their losses in the form of special compensation.’ When these people ban gatherings for the sake of the community to prevent the spread of the coronavirus, but are asked to bear the resulting damage entirely on their own, I think, ‘This is ridiculous,’ so I created the Corona Loss Compensation Act.

 

However, it was not only me who thought that way, but Rep. Choi Seung-jae and Justice Party Rep. Sim Sang-jeong, who became People Power Party proportional representation members of the National Assembly through small business owners, were also thinking that way. Until then, I had never had a private phone call with Rep. Sim Sang-jeong. When I created and proposed the bill, I got a phone call. I said on my cell phone, ‘Congressman, you really did a good job drafting the bill. I was also preparing, but I don’t think I can make it better than the lawmaker’s bill, so I support it.’

 

I was wondering what to do to pass the bill. In just one day, it received a joint motion from 63 members of the National Assembly. The next morning, I held a press conference and I have never been bombarded with so many cameras. After giving the presentation in a heated atmosphere at the press conference, I went to the back-briefing room and there were just as many reporters and cameras waiting there. Typically, there are one or two reporters who come along for a briefing. I had no experience holding a press conference on my own, and I didn't even know if I should be the one to do the back briefing. Even though I didn't prepare anything, I think I spent about 30 minutes answering questions through the back briefing.

 

The next day, the Democratic Party Supreme Committee was held. After the meeting, Spokesperson Heo Young, who came out to brief reporters, announced, “We have decided on the special law created by Rep. Min Byeong-deok as a party line.” It felt like a dream, ‘the law I created became the party line.’ Min Byeong-deok caused an uproar.

 

That was probably Friday. However, during the so-called Party Government Office meeting over the weekend, the plan will face strong opposition from the Ministry of Strategy and Finance. The Ministry of Strategy and Finance said, ‘This cannot be done.’ The amount I expected was 100 trillion. So my nickname became Min Kyeong-yeong.

 

As the weekend passed, at a high-ranking party and government meeting, they said, ‘I hope the interviews will stop now,’ and on the following Monday, the party leadership also said, ‘You’ve worked hard, but it’s enough now.’ There were times when I thought about risking my political life and ‘taking it for a spin’, but up until that time, it was an unwritten rule that ‘you can’t stand out’ for first-time lawmakers.

 

So I said, ‘Okay, I understand,’ and prepared foreign cases. We had direct Zoom meetings with foreign countries every few days and held discussions to study foreign cases. We continued to send those materials to leadership and lawmakers. The more it piled up, the more the party started to say, ‘If we don’t do it, it won’t work.’

 

In the meantime, Rep. Choi Seung-jae and Rep. Sim Sang-jeong suggested that we should do this jointly, so they held a protest. Rep. Choi Seung-jae staged a sit-in protest and went on a hunger strike. The demand at that time was, ‘Let’s pass the Min Byeong-deok bill.’”

 

Now that he has been re-elected as a member of the National Assembly, he is holding a variety of key positions in the party, including the floor leader's chief of staff, vice-president of the organization's secretary-general, and senior vice-chairman of the policy committee. How is this possible?

 

“I think relationships with the people I work with are key. Working hard is important, and everything else is important, but the people you work with should have fun and feel rewarded, right? That's the key.

 

When I was Vice President for Organization, I visited provincial and provincial parties across the country about three times. When I went to the Busan City Party, a party official said, ‘I’ve been in the Busan City Party for 10 years and I’ve never had anything like that happen.’

 

So, I constantly do things like knowing what a member of the organization is doing and praising them for it. Then it becomes fun.

 

There is an Organization Bureau under the vice-chancellor of the Party Organization. I interview each and every employee of the organizational bureau, find out what he or she is good at, what he or she wants to do, and organize it so that he or she can do it through me.

 

Then, a lot of people will find it interesting, and the reviews will be positive, and all of those reviews will be gathered together.

 

The second must be one-headed.

 

 

Isn't the goal a plan for how to distribute the work and achieve some level of results?

 

For example, when I was in charge of the Subcommittee on Budget and Accounts, I was in charge of the southern part of Gyeonggi-do. Being in charge of the southern part of Gyeonggi-do means that you have to listen to everything from the regional committee in the southern part of Gyeonggi-do and play a role in carrying it out. In that case, instead of making a hasty contact and saying, ‘He’s not here,’ I asked, ‘Please be sure to send me a few items and by when,’ and explained the entire process. ‘I don’t work in vain. Don't talk nonsense. ‘I don’t make promises in vain.’

 

Next is ‘treating people with sincerity.’

 

Knowing how to work means that in holding a major position, ‘Min Byeong-deok will do a good job if you ask him to do it. “I think this is the factor that mainly leads to evaluations like ‘Min Byeong-deok is good.’”

 

In the last election, Anyang’s 10 major pledges were put forward. Of course, you have to do everything, but what if you have to prioritize among them?

 

“The pledge that received the most enthusiastic response from Anyang citizens was the ‘Seoul National University Anyang direct line.’

 

As was the case this time, it was very sensational when the pledge was first announced. It is now taking a step forward under the name of the southern extension of the Western Line. Although there is still a long way to go, the name Western Line Southern Extension was received from Gyeonggi Province and planning has begun.

 

The second is the issue of coordinating the special law on old planned cities that will soon be proposed and implemented. If the Special Act on Planned Old Cities is implemented, it will sweep Pyeongchon by storm. That will be during my term, and people's desires will fully erupt. How can this place become a Seondo district all at once? We will go in order, but I think that coordinating the ranking process is a very big task. It's too difficult. I think there will be a big problem if this goes wrong. “It’s not something I can do alone.”

 

Do you have any plans for legislative activities for the 22nd National Assembly that you plan to focus on now?

 

“Basically, in relation to regional pledges, the issue of extending the southern part of the Western Line to the Seoul National University Anyang direct line that I mentioned earlier, then extending Incheon Subway Line 2 to establish Bisan Intersection Station, and then now the problem of reorganizing this Pyeongchon new town, this is a very big burden. is approaching.

 

One more thing to say about the region. Although it is not necessarily related to the region, there is an illness allowance that is being implemented as a pilot project in our region. In the process of establishing it, what kind of system will it be established in? For example, a plan to give everything regardless of income ranking, a plan to give only to the bottom 50%, and a plan to only do one or the other, these various models are currently being piloted as pilot projects. It is being implemented.

 

It will be within the next year or so, or about two years, before sickness and sickness allowances are established nationwide. I brought it to Anyang as a pilot project. It is very important to the people that it is well established.

 

If you get sick while working, unless it is an industrial accident, you do not get paid because it is not paid leave. Then it increases the disease. However, if the government provides 60% of the minimum wage as sickness allowance, you can at least make a living with it, heal your illness, and return to work. This is a very big problem for people's livelihood. That is my number one bill. It is a very big task to establish it.

 

As for the country as a whole, I don't think we should just ignore our fundamental problems. I really wanted to finish the national pension this time, but it's a bit disappointing that it didn't work out. They even opened a public deliberation committee, but the president kicked it out. ‘We will have more experts discuss it in the next National Assembly.’ This was just thrown away because the public deliberation committee did not reach the conclusion they wanted. I don't think that should be the case.

 

‘What should we do about the climate crisis now?’, ‘Fundamentally, what kind of country should Korea be in 30 years?’, and ‘What kind of world will we pass on to our children when they reach their age?’ are important. . I hear from my children, ‘My father was in politics. But will he be proud of his father's politics or will he be proud of his father's good politics? What kind of world has he created? I think it’s troubling to hear an assessment like, ‘We can’t even solve this problem.’ Will our children be proud or ashamed of their father's politics? Of course, shouldn’t we be proud?

 

Right now, I'm busy dealing with only small issues, but I feel unfair if I don't solve the fundamental problems, but I also think I won't be evaluated well by my children, so I have to worry about those fundamental problems, such as pension issues, climate issues, polarization issues, and North-South relations. I don't think we will pass over the issue of unification or other issues like this.

 

When I was first elected, I did not have much ability to ‘set the agenda.’ But that is not the case now. Now it's re-election. They can play an important role in re-election.

 

“If I become the chairman of the Gyeonggi Provincial Party Committee, I will be able to run the provincial party entirely as I think, with personnel rights, budget rights, and execution rights.”

 

In the book, ‘Being a member of the National Assembly is neither a dream nor a goal. ‘It is a means to create a better world,’ he said. What kind of world does Rep. Min think is a good world?

 

“I think I mentioned it earlier, but I don’t do politics while looking at the next election, I do politics now while looking at what our country will be like 30 years from now.

 

Then why 30 years later? Simply put, what kind of world should we pass on to our children when they reach my age? In other words, my grandfather had 11 siblings, and he worked hard to take care of them so that my father's brothers could live better than he did. My father also worked very hard to ensure that I and his children lived better than he did, and he died young. They have created a better world like that. I also have the same thoughts.

 

But I think there is a greater possibility that our children will live in a world that is not a better world than the one we have now.

 

Then, I think that changing that and passing on a better world to our children should be the goal of my politics.

 

So what kind of world is that? Shouldn’t we create an environment where our children can’t live safely? That is why environmental issues have become an important issue. After that, the environment is fine, but we can't end up in an unstable world where war breaks out, missiles fly, and war continues.

 

So, we are assuming a country that has achieved unification, overcome the aftereffects of unification to some extent, and become the culturally prosperous country that Kim Gu dreamed of.

 

There are environmental issues, issues between North and South Korea, then issues of preventing the deepening of community polarization, issues of restoring communities, and finally, I dream of a country that is culturally prosperous.

 

In order to do that, we work together in politics with people who agree, raise juniors who agree, and say, ‘My portion is 5 years. “You do it for the next 5 or 10 years.’ And the goal is achieved as those who agree to that continue to do so.”

 

Rep. Min, what is your dream as a politician?

 

“I have the thoughts that ‘I hope to become a useful person’ and ‘I hope to become a useful person.’ So, the winner said, ‘I will be of good use to my neighbors and the world.’

 

People who are useful to their neighbors and the world, people who are needed by the community, this is the first thing, and the second thing is to say 'where the Republic of Korea should move forward', and to say it a little louder, 'I think this is where the world should move forward' and contribute a little to that. “This is my goal.”

 

Do you have any intention of leading the way forward into the world?

 

“That may vary depending on the role. I think not only I am involved in politics, but all the people helping me are also involved in politics. We are all playing the roles of creating the world together, and now I am the player.

 

As a player, what it means when I am elected for the first time, re-elected, and take on a certain party position is that I am expanding my influence to do what I want to do.

 

So, I don't want to specify what position I want to go to, or what position I am currently in, but I want to go to a position with greater authority, a position with greater executive authority, where I have the power and influence to do the things I dream of a little better. “It’s natural because it’s something.”

 

Have you ever thought of taking that position yourself?

 

“First of all, I plan to run for Gyeonggi Provincial Party chairman. The current policy chief is very interesting, and I have served in party positions several times, but being the provincial party chairman is a different personality. This means I can completely do what I think within a certain range. “I want to try it because it allows me to run the party in Gyeonggi-do in a more comprehensive way.”

 

Then, of course, you would want to become the party leader...

 

"Of course. I'm not doing it right now because I still lack the subjective and objective ability to become the party leader, but I said, 'I'm ready at this level.' If you work hard, you can do it. “When I gain confidence that I can lead the party to a certain extent, I think I will take on the challenge.”

 

It feels like you are advocating for people's rights as a very important topic. Is there such a thing as a political motto?

 

“It is a hearing. When people listen, they create their own policies.

 

Now, rather than creating certain policies in the minds of expert committee members or the Democratic Research Institute, if you go to the field and listen to the opinions of citizens, policies will come out naturally there. And the effect of that policy is much greater. Because that policy was created because someone said so. It's his. Then how proud he would be. For example, the Corona Loss Compensation Act, which I am most proud of, I tell the merchants in Anyang, ‘You created it.’

 

There is something called KakaoTalk gifting. If you give a gift worth 20,000 won, you can buy a cake with a mobile gift certificate. Then, at Paris Baguette or something like that, you get 18,000 won. After deducting 10% as a commission, the business owner receives 18,000 won. It is also settled after 45 days. I never knew about this because I never received or used KakaoTalk gifts.

 

Someone came here and talked about that. I thought, ‘Isn’t this too unfair?’ and asked, ‘Brother, please tell me more about it.’ I listened. We're changing it now by digging, digging, digging. The market is currently worth about 10 trillion won and continues to grow.

 

The meaning of ‘people’s foundation’ is that ‘policies and visions come from the people,’ and politics is about coordinating them well. The key word for coordination is that I think of myself as a harmonizer. He is a rice speaker and an entrance speaker. We need to share food to create harmony.

 

When sharing food, shouldn't we share it persuasively according to each person's needs, contributions, and such to achieve harmony? In political science, it is said that ‘politics is the authoritative distribution of scarce values.’ This is exactly right. “I’m going to try my best to do that.”

 

 

Citizens of Anyang, is there anything you would like to say to the readers of the Weekly Hyundai Newspaper?

 

“I want to say ‘thank you so much’ for believing in me and giving me the opportunity to work.

 

There are three aspects to working as a member of the National Assembly. Since members of the National Assembly are ‘representatives of the entire people elected from their constituencies,’ I think they must first do the work needed by their constituencies well.

 

Second, since he is the representative of all the people, he must do well in matters related to the livelihood of all the people. These are issues that concern the very foundation of our society.

 

Third, once the government was taken away, the ability to execute was greatly reduced. In order to regain power, one must have the will to power. The power struggle to have the authority to implement policies is something I think we need to work hard at.

 

“I tell you that I will do my best in these three are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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